제목 : 성탄을 맞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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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796 등록일 : 2021.11.18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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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을 맞는 우리의 자세
2008. 12. 기독 신문기사
글 채영애
Merry Christmas 는 사람이 가진 언어 중에 최상급이다.
더 높은 언어가 없는 이유는 더 영광스러운 일이 사람에게는 없었고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Christmas의 뜻은 복합어 인데 Christ, 즉 구주께, Mas, 즉
큰절 (경배)을 드린다 는 뜻이다.
Merry Christmas는 “구주께 경배함으로 기뻐하라” 는 뜻이다.
구속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녀가 된 그 순간부터 영원히, 이 땅과 하늘나라에서 기뻐하는 것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께 온 몸과 마음으로
노래하고 경배하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이유는 하늘나라가 기쁨과 즐거움, 노래와
경배의 나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 69:30, 시 16:11, 계 4,5장).
저의 생각으로는 크리스마스를 맞는 우리의 자세는 크리스마스를 만든
분의 마음을 알아 감에서부터, 그리고 만든 분이 축하하시던 대로 하면
된다고 본다.
창세기 3:15에서, 첫 번째로 성탄의 주인께서 성탄을 선언 하시면서
수 천년 동안 성탄의 이유와 그 모습과 의미를 구체적으로
300번 이상 설명해 주셨다.
그 모든 것이 2천년 전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첫번째 크리스마스로 시작이 되었다.
천사들은 첫 번째 크리스마스의 소식을 소박한 목자들에게 알려 주었는데
그 내용이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였다.
인생살이의 무서움들은 무산 되고, 모든 사람이 소원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다.
우리를 해치려는 사람과 살기는 참 어렵다. 우리를 위해 주는 사람과
사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안도가 되고 새 힘이 나게 하는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오셨다.
이 첫 번째 성탄의 소식을 들은 목자들이 조용히 있겠는가?
즉각 일어나서 아기 예수님을 찾아 가니 말구유라,
거기서 엎드려 큰절을 드렸다. 그 큰 절이 첫 번째 크리스마스다.
먼 동방에서 긴 세월, 보물을 들고 찾아온 학자들이
아기 예수님께 보물을 드리고 땅에 엎드려 큰절을 드렸다.
두 번째 크리스마스일까?
아기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확증하기 위해 오래 준비하신
노 선지자들 시므온과 안나도 성탄을 선포하고 그들의 임무를 완수했다.
크리스마스를 맞는 우리의 자세 는
첫째: 우리의 대속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려고 이 땅에 와주신
구주 예수님께 온 마음을 다해 기쁨과 감사의 큰절을 드리고
둘째: 이 기쁨의 소식을 그 의미와 함께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고
셋째: 그 사랑을 가족과 친구, 이웃들과 나누며 즐거워하고
넷째: 삶의 연륜이 더 할수록 성탄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더 배워가며 날마다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다섯째: 영원히 메리 크리스마스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Christmas 는 영의 전쟁에서 최후 고지 점령을 위한 전투라고 본다.
다른 종교들도 사람들에게 절을 많이 시키지만 이슬람은 특별하다.
하루 5번씩 엎드려 절하게 함으로 그들의 신이 얼마나 사람의 절을
받고 싶어 하는지 알만하다.
이슬람이 들어가면 전쟁과 종족멸종의 대 학살과 절하기가 기본이다.
수단, 소말리아, 콩고, 나이제리아 등 아프리카 대륙에서
여성들과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춘 성폭행과 무차별 살인은 그들의 종교다.
이슬람의 신학 책을 좀 읽으면서 그 저주, 두려움, 비일관성, 전쟁,
사람을 피할 곳 없는 궁지로 몰아넣는데 거의 아찔했다. 이 뿌리를 알기는 쉽다.
누가복음을 펴 읽으면서 예수님이 얼마나도 고귀하신지
우리 찬양의 대상이 어떠한 사랑이신지 새삼스러웠다.
그의 끝없는 사랑 때문에 자원하여 경배 할 수 밖에 없다.
예수님께서 이 지구에 오시지 않으셨다면
이 지구는 지금 어떠할까? 첫째로 크리스마스가 없을 것이고,
교회가 없을 것이고, 구속이 없을 것이고, 민주주의가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원수가 얼마나도 간교하게 크리스마스를 없애려고 하는가?
십 여년 전, 성탄 직전 미국에서 비행기 안 승무원이 해피 하누카 (유대인 수전절)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당연히 이 시점에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해야지 왠일이냐!
그렇게 언어가 진행이 되어가더니 지난해는 드디어
미국 고관들의 공식 인사는 Happy Holiday 였다.
언어의 영향은 원래 대단하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성탄 축하 대신 송년 파티, 수년 전에만 해도
Merry Christmas 는 없애고 Season's Greeting 이라고 상가에서 쓰더니,
이제는 아예 글씨를 쓰지도 않는다. 그 아름다운 백화점과 번화가의 불빛
나무들은 성탄계절에 벙어리가 되었다.
몇 년 전에 보니까 그 대형 백화점 불빛 장식 위에 조그맣게
happy sale 이 있었다. 그것이 명문 전부였다.
구주 성탄 축하를 해야지 산타크로스냐의 논쟁은 이제 거의 필요 없다.
크리스마스 자체가 대한민국의 주류 사회에서 서서히 사라지는 이 시점에서.
배가 가라앉을 때 꽃이 아름다운가 잎사귀가 아름다운가는 불필요한
논쟁이다. 몇 년 전만해도 상가에서 동기는 다를 지라도
메리 크리스마스를 붙이고 크리스마스 케롤이 나올 때 고마웠다.
거기서라도 성탄을 알려 주니까. 이제는 성탄 계절이 와도 마지막 남았던
상가까지도 조용하다. 무관심이다.
교회는 오색 감빡이 불 뿐이다. 찬란한 네온사인 속에 그것은 밤에
교회당 장소를 알려 주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구주 성탄 메시지가 있어야 사람들이 알게 되고 축하를 한다.
성탄 그림과 글을 걸어야한다. 초중고등 학교 방학도 지난해에
이곳은 12월 29일 주위로 하여서 10수년 동안 하던 마을 군부대
성탄 축하를 할 수 없었다.
수 많은 천사들이 밤하늘에서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 라고 joyful noise 를 울리던
첫 번째 크리스마스, 탄일종이 땡땡땡 치고 새벽 송으로 들떠 즐거움으로
왁자지껄하던 한국 교회의 오랜 성탄 축하가 다시 살아나기 소원한다.
모든 사람들은 즐거운 잔치를 원한다.
구주 성탄의 잔치야 말로 모든 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잔치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민족적으로 벌릴 영광과 평화의 잔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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