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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꿈 여행

그때 대구 2011(권옥규 사모님 글입니다.)

1,871 2011.11.27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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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대구 2011

                                                                      - 권옥규 사모님 -

 2011년 8월 25일부터 9월 4일까지 대구에서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가 열렸다.
이 기간 동안 JDI(대표 채영애 박사)에서
대구를 찾은 수많은 외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성령님이 총사령관님이시고 복음에 불타는 채 박사님을 팀장으로 해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는 전사로 나섰고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으로서 그 때의 일을 나누고자 한다.

 2011년 6월 16일 채 박사님<진천>과 이영미 집사님<구미>, 나<경산> 세 사람은
삼덕교회 '도시의 광야' 카페에서 지구인 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전도를 위한 기도회를 가졌다.
나는 대구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우리보다
멀리 계신 채 박사님이 이 행사를 위해 기도로 준비하며 마음 바빠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찔리며 뜨거움이 불붙기 시작했다.
 
8월이 되고 CTS 기독교방송 뉴스에서 선수촌교회를 소개하는 모습을 보고 '
나도 언제 한번 가봐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개막식이 있기 일주일 전인 8월 22일 동구 율하동에 방까지 얻으셨다는
채 박사님의 전화 말씀을 들으니 정신이 번쩍 났다,
채 박사님 전화를 받고 구미 옥계목장 교회 이영미 집사님과
대구역에서 만나 선교 현장으로 갔다.
이때는 선수촌 교회가 우리 모임의 베이스캠프였다.
매우 잘 꾸며진 예쁜 선수촌 교회에서 채 교수님과 
정한수 사장님(이번 육상대회 때 혜성처럼 나타나 '오늘의 크리스마스'홍보대사 역할을 해주시고
영어 전도 시연도  보여 주셨다. 처음엔 장로님이신 줄 알았는데
성도님이라는 말씀에 정말 든든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일본 선교 가이드 하시는 김영숙 선교사님,
또 '오늘의 크리스마스' 일본어 번역을 하신 한수남 전도사님을 만나 합세하였다.
하나님이 숨겨놓으신 7천 명의 노련한 용사를 만난 기분이었다.
주님이 채 박사님을 사용하시어 준비하신 녹색의 작은 전도책자를 보니 너무 예쁘고 귀여웠다.
한국어, 일어, 스페인어, 영어, 러시아어, 아랍어로 된  전도책자를
1톤 트럭 분량 준비하셨다는데 이 작은 전도책자를 통해
세계 각 나라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그들의 안방까지 전해지길 기도했다.
율하 선수촌 마을과 롯데마트 주변을 전도하였다.

 구미 이 집사님과 함께 칠성시장 지하철역에서 만나
전도지 가방을 전달하고 돌아서는데 동생 소식을 들었다.
두 달 전 심장마비로 쓰러진 동생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지난 2개월 간 동생의 병 낫기를 위해 수많은 믿음의 식구들이 금식하며 매달렸지만
하나님의 뜻은 여기에서 동생을 부르시는 것이었다.
마음이 아팠지만 동생의 소천을 통해
제부와 조카들, 서울 형부와 조카가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동생의 소천을 통해,
집안에서 나 혼자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 30년 간 기도해왔던 친정 복음화를 이루어 주셨다.

정신없이 3일간 장례식을 마치고 8월 26일 채 교수님의 전화를 받았다.
"사모님! 일 할 사람이 너무 없어요."
다급한 채 교수님의 전화 목소리를 듣고
성령에 이끌려 김밥을 싸서 선수촌교회로 갔다.
베이스캠프인 선수촌교회가 사정이 생겨
다른 곳을 물색해야하는 위급 상황이라고 해서 걱정하며 함께 기도를 드렸다. 

8월 27일 여자 마라톤 출발지인 한일로에 갔다.
한일로 국채보상공원으로 가는 길이 만만치 않아
버스, 지하철, 택시를 갈아타며 겨우 도착하니 차도는 없어지고
출발지인 동인동 사거리는 행사장 거리로 바뀌어 있었다.
흑인, 백인, 황인들......
수많은 인파가 바닷물처럼. 태산처럼 밀려오고 밀려가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치 천국 시상대에 온 것처럼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들의 경기 모습을 보며 우리도 복음의 경기자로서 끝까지 잘 달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주
님 앞에 설 때까지 영적싸움에 승리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응원 인파 속에 간간이 일장기를 든 사람이 눈에 띄면
반가워 간단한 일어로 인사하며 전하니 다들 잘 받아 주어 매우 기뻤다.
일본 단기 선교 때 쓰던 일어 명찰을 달고 나가길 참 잘 한 것 같았다.
극적으로 채 교수님과 만나 결승점 보도국 안으로 들어 가보니
결승점을 통과해 이제 막 들어오는 1등 케냐 선수들은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인터뷰에 바빴고
그 후 속속 도착하는 여자 마라톤 선수들을 보니
무더운 탓인지 어떤 선수는 호흡 곤란에 계속 구토를 하는 등 힘들어 보였다.
성적이 기대보다 좋아서 기뻐하는 선수들의 모습도 있었지만
기대에 못 미쳐 체념하여 낙심한 선수의 표정은 너무 불쌍하고 애처로웠다.
영어를 잘 하시는 채 교수님은 애절한 목소리로 외치며 종횡무진 다니셨다.
그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줘야 된다며
“웰컴 투 코리아, 콩그래쳐레이션"을 외치며 영어로 축하하고,
또 한편 위로하며 다니셨다.
불쌍히 여기는 교수님의 옆모습 속에서 마더 테레사 얼굴이 연상되었다.
저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매일 구미에서 올라와서 '오늘의 크리스마스'를 전하는,
열심히 대단한 이영미 집사를 만났다.
반가워서 우리도 마치 외국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얼싸안았다.

8월 28일엔 현흥교회 윤성일 목사님, 송은영 사모님, 동인, 동주 온 가족과
김은주 권사님, 오판순 집사님, 김필선 집사님과 합세해서 선수촌 주변을 전도했다.
잔디밭에 6가지 전도지를 펴놓고 전도하니 뿌듯했다.
저녁엔 전도지가 다 떨어져 두 딸을 오게 해서 전도지를 다시 만들어 충당했다. 
딸들과 함께 선수촌교회에서 사진도 찍고,
선수들에게만 무료로 제공되는 커피도 사주며,
외국인 선수들과 사진도 찍으며 
딸들에게“
은비, 단비야 너희들의 존재 이유를 생각해라. 너희가 전도자임을 한시도 잊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우리 현흥교회도, 중산제일교회도 대구 육상대회를 전도의 기회로 삼으려고
119전도대까지 동원했지만 마땅한 전도전략도 전도지도 없었는데,
전도와 선교의 영적 거인인 채 박사님과 성령님께 이끌려서
“오늘의 크리스마스”꼬마책으로 전도하게 되니 너무 기뻤다.
박사님의 초등학교, 대학 동창생들의 숨은 헌신들 모두 함께 동역 동행케 하셨는데,
나를 전도자로 써주심에 너무 감사하는 마음이 흘러 넘쳤다.
현흥교회 윤성일 목사님, 송은영 사모님은
아시아 영화제와 평창 등 세계 스포츠 각종 대회 등
어디든 달려가 전도하고 싶은 불이 붙으심을 고백했다.
선교는 가슴 설레는 모험이란 말이 실감이 났다.

8월 29, 30일 밤엔 월드컵 경기장 주변 전도를 하였다.
아침엔 사랑의 옹달샘 베이스캠프에 들렀다.
옹달샘 캠프는 선수촌 아파트 바로 맞은편 식당 앞을 빌려 쉼터로 사용한 곳이었다.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셔틀버스가 서는 장소라
외국선수들이 오가며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곳이라 자연스럽게 전도지를 나누기 매우 적합했다.
넓은 터에 울긋불긋 형형색색의 파라솔 그늘까지 치니
마치 야시장 5일장 마당처럼 푸근하게 보였다.
산더미같이 비치된 전도물품들과 아이스크림까지 모두 모두 공짜였다.
'아, 이곳이 전도지를 줄 수 있도록 주님이 예비하신 장소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일에 협조해주었던 이 식당 주인이 며칠 뒤에 예수님을 영접한 것은 또 다른 기쁨이 되었다.
 
8월 31일 수요일 밤.
경기장 4번 게이트 앞에서 '오늘의 크리스마스'를 세팅해놓고 기다리고 있다가
채 박사님 손에 이끌려 생각지도 못했던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서치라이트가 대낮처럼 밝게 비추고
만 여 명의 인파가 자리를 빼곡하게 메우고 있었고
장대 높이  뛰기, 던지기, 계주 등 4경기가 한 눈에 들어왔다.
처음 본 광경에 깜짝 놀랄 지경이었다. 
순간 성령하나님의 감동으로 천국 혼인 잔치 때가 생각났다.
지금 나의 삶 하나하나 모든 것이 주님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는 생각에
하나님! 다 보고 계시는군요. 감사드립니다.”고 기도하였다.
경기를 보다가 전도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급히 나와 전도지를 나누는데
중산제일교회 채종선 권사님이
“사모님! 내가 전도지를 들고 서있는데 외국인들이 스스로 자기 나라 전도지를 찾아서 가져가던데요.”
하시는 말을 들으며 성령님의 역사가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9월 1일에는 일산 MBC에 근무하는 청년회 서현주 자매도 휴가를 반납하고 대구로 내려왔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 글로벌 미션 팀과 내려와 선수촌교회에서 훈련하며 복음을 전했다.
소방본부 119 전도대 박영민 팀장님과 팀원들과도 만났다.
대구와 경북에 있는 우리들보다 서울에서, 용인에서, 충북 진천에서 와서
더 뜨겁게 전도하는 모습을 보니
그들을 이끌어내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했고,
더 열심을 내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9월 4일 주일
마지막 날 밤에는 선수, 기자, 임원들의 파티행사가 열리는 장소인 율하시민공원 옆에 도착을 했다.
마지막 날이라 아쉬워 더 열심히 전도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전도를 했다.
"월요일 강의가 있어 먼저 진천에 갑니다. 기자촌 쪽 전도를 부탁합니다."는 채 교수님의 연락을 받고
저녁 9시 쯤 기자촌 아파트에 갔다.
친절한 경찰의 안내를 받으며 상가에 차를 세웠다.
불신자인 세탁소 주인이 나오더니
"도대체 어느 교회가 이렇게 밤늦게까지 좋은 일을 하느냐."며 선물까지 챙겨주었다.
참으로 감동스러웠다.
'절대 지옥 가면 안 되는 귀한 영혼을 만나는 일인데
밤이 깊은들 그들과의 만남을 주저하겠는가.'라는 생각이 들며 기운이 났다.
외국인과 함께 지나가던 분들 중에 자신이 장로라고 밝히며 고마워하시기도 했고.
순찰을 돌던 경찰들이 다가와 볼펜을 줄 수 있냐기에 전도지와 함께 드리기도 했고,
택시 기사분이 차를 세우고 와서 친구들과 나누겠다고 전도지를 받아가기도 했다.
남을까봐 염려했던 전도지는 오히려 모자라 더 가져와야했다.
전도를 마치고 새벽 1시가 넘어 기쁨으로 선수촌 아파트 앞까지 돌아오니
어디선가“볼트가 왔다!" 소리가 들렸다.
청소년들이 잠도 안자고 그 차를 좇아 왔다 갔다 따라 다니는 모습을 보며
우리 다음세대들이 예수님 영접하며 예수님을 저렇게 따라다니고
예수님께만 소망을 두길 간절히 기도했다.

9월 5일에는 퇴촌 준비를 하는 선수촌 앞과
공항, 동대구역에서 귀국하는 선수들에게 전했다.
돌아가는 마음이 바쁘고 분주해서인지 선수들이 잘 받지 않아 아쉬웠다.
모든 결과를 주관하시고 열매 맺게 하실 주님께
"그들의 안방까지 가져가게 해주세요.
이 복음 책자로 인해 핍박 받는 일 생기지 않게 해주세요."하고 기도 드렸다.
지난 5일간 옹달샘 베이스캠프에
누구든지 와서 쉬며 아이스크림(백만 원 어치!)을 먹으며 행복해 하는 모습,
주변 공사장 인부들이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와서 성경책 읽고 가던 모습은 정말 잊히지 않는다.
그야말로 천국의 잔치, 성령님의 역사였다. 

대구 육상 선수권 대회 때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아름다운 크리스천들과의
귀한 만남이 계속 이어졌던 것도 참 감사하다.
시대마다 숨겨진 일꾼들을 찾아 쓰시는 예수님께 찬양과 경배를 올린다.
대회 기간 나누었던 '오늘의 크리스마스' 전도책자를 만드시고
6개 언어로 번역하시고 총지휘하셨다던 채 박사님!
전도책자의 비용 3,000만원은 한 영혼 한 영혼을 생각할 때
3,000억 원의 가치와도 비교할 수 없다는 그 열정과
우는 선수 안아주며 기도해 주고 가난한 나라 선수들이 돌아갈 때
한 보따리씩 선물을 싸주는 엄마 같은 사랑을 잊을 수가 없다.

도시 농촌 선교회 최원수 장로님도 사랑의예수 전도대와 함께 오셔서
“우리는 예수님만 믿는 하나님의 자녀랍니다."내용이 각 나라 말로 인쇄된 미용 소금과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 적힌 귀한 소금 전도지를 나눠주셨다.
기드온 협회에서는 한영 성경을 나누어 주셨고,
또 대구 제일교회 고마운 강경임 집사님은 옹달샘 옆을 지나가다
선물을 나눠주는 모습에 감동되어 천을 한 차나 보내주셨다.
보름동안 성령님과 채 박사님에 이끌려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랑하는 동생을 떠나보낸 슬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복음으로 행복하게 보냈다.

무익한 종을 써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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