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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애/국제예수제자들 대표:8(역경의 열매)
◎박사인 내게 “시골선교”기도 명령/“평신도인데” 기도항변… “충북으로 가라”음성/12년 방치된 폐가 임대하니 “혹시 무당” 의심

미국에서 전공을 살리는 교수나 전문직업을 가진 채 제자양육을 하며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리라 생각했던 나에게 한국의 시골마을에 들어가 선교하라는 주님의 명령은 당혹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나님.저는 평신도입니다.공중보건학만 10년 이상 공부했으니 이쪽으로 나가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그대신 제가 깨달은 주님의 은혜와 사랑은 제자양육을 통해 전하겠습니다.저는 목사나 선교사가 아닙니다』

발을 빼려고 할 수록 주님의 명령은 더욱 단호하게 나를 사로 잡았다.분명한 음성은 아니더라도 주님을 향한 기도의 시간을 가지면 어김없이 한국에 돌아가 공동체선교를 시작하라는 명령이 다가왔던 것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랑도 없는 내가 어떻게 「사랑의 집」을 운영하느냐고 하나님께 반문했다.그러나 하나님은 로마서 5장5절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를 기억나게 하심으로 더 이상 할 말이 없도록 만드셨다.

이 때 월드비전스태프로 한국에 있을 때 제자양육을 시킨 한 부부에게서 편지가 왔다.박사님의 양육으로 우리 부부의 영혼이 소생되었고 그 양육이 계속 뿌리를 내려 확산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가슴에서 뜨거움이 치밀었다.주님이 미약한 나를 쓰신다는 사명이 느껴지며 한국에 가기로 결심했다.그리고 내가 사역할 지역이 어디인가를 구체적으로 알려달라고 기도했다.그런데 충북이라는 음성을 들었다.

그것이 사실인지 한국교회현황자료를 찾아보니 충북이 제주도 다음으로 성도수가 가장 적었다.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5가지에 해당되는 마을을 찾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곳곳을 누볐다.그 5가지는 교회가 없는 마을,병원이 없는 마을,개신교인이 없는 마을,서울과 그리 멀지 않는 마을,아름다운 시냇물이 있는 마을이었다.

그곳이 바로 내가 지금 7년째 사역하고 있는 충북 진천읍 행정리이다.앞서 기도한 5가지 조건이 모두 구비된 마을이었다.이곳에서 「사랑의 집」을 시작할만한 빈집을 찾아냈다.12년째 방치된 이 집은 동네사람들에게 「전설의 고향집」으로 불렸다.도저히 집이라 불릴 수 없는 이 폐가를 1년 임대료 15만원을 주기로 하고 빌렸다.집주인은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내가 혹시 무당이 아니냐고 했다.

이 집을 완전히 청소하는데 1년이 걸렸을 정도였다.나는 처음에 「사랑의 집」이라고 이름만 걸었을 뿐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그저 주민의 한사람으로 평범히 생활하기로 했다.

한국에 왔을 때 예전에 뿌린 제자양육 순모임이 곳곳에서 알찬 결실을 맺고 있음에 감격했다.이사야서에 「복음은 매이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 말씀이 그대로 입증된 셈이었다.이들과 같이 교제하면서 모임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국제예수제자들의 모임」을 탄생시켰다.

진천에 내려왔을 때 주머니에 남은 돈은 3천원이었다.우리는 가난했지만 하나님의 창고는 언제나 풍성했다.하나님은 자만하지 않을 만큼만 채워주시곤 했다.진천에서 함께 생활해 주기로 하신 이모님과 나는 노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동네사람들을 만나 일일이 인사부터 드리는 것으로 사역을 시작했다.〈정리=김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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