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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애 국제예수제자들(JDI) 대표:1(역경의 열매)
◎「삶은 벅찬선물」깨닫기까지 나도 혼돈과 방황속에서…/목사 아버지 부모사랑속 행복한 어린시절/중3때 어머니 별세… 위궤양·가정의 고통

얼마전 시골의 버스안에서 만난 한 구도자는 『인생은 혼돈과 방황의 연속』이라고 정의했다.나는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저렸다.나도 그와 같이 인생이 혼란스럽고 괴로웠으며 온통 슬픔으로만 가득 찼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삶이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가슴벅찬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였다.그 진리를 획득하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갈등이 있었다.그러나 이제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보노라면 이것이 지름길이요,주님의 세밀한 손길이었음을 깨닫고 감격하게 된다.

오늘날 사람들은 앞서 말한 혼돈과 방황 속에 인생을 낭비하고 병들고 죽어간다.삶의 해법을 모르기 때문이다.나도 인생의 실패자였고 상처투성이인 채 세상을 이기려고 버둥거렸다.그러나 주님의 은혜를 체험했을 때 인생은 정답을 보고 시험을 치는 것처럼 쉬웠고 기쁨이 넘쳤다.

솔직히 아직 짧고 부족한 나의 지난 시간을 드러낸다는 것이 주저스럽고 부끄럽다.그러나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만나고 체험한 하나님의 영적세계가 나에게만 해당되는 특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보편타당한 은혜이기 때문이다.

나의 삶에서 가장 영향을 미친 분을 꼽으라면 예수님을 제외하고 바로 어머님이다.어린 시절 내가 눈을 떴을 때 어머님이 한번도 옆에 계신 적이 없었다.늘 새벽기도에 일찍 나가셨고 내가 학교에서 돌아와도 다락방에서 기도하고 계시기 일쑤였다.

장로교 목사였던 아버님 밑에서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고 자란 나는 집과 학교,교회 이 세 곳이 전부였다.그리고 이 모두가 행복했다.가정이 넉넉하고 부모님의 사랑이 극진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한달에 두 번씩 신약을 완독하시며 중학생이 된 내게 끊임없이 성경읽기를 요구하셨다.그래서 열심히 읽고 읽었다.그런데 워낙 어린 나이라 천국가는 것에 확신을 갖지 못했다.

길고 긴 영적방황이 시작된 것이다.감수성이 예민한 중3때 어머님이 돌아가셨다.엄청난 충격이었다.그리고 이 충격은 생활의 변화로 이어졌다.살림을 맡아야 했고 동생들을 돌보고 신경쓰느라 심한 위궤양을 앓기 시작했다.

조금만 일해도 머리가 어지러워 쓰러졌다.내출혈이 심해 병원에 실려가기 일쑤였다.교회를 계속 열심히 다녔는데 이때 나의 신앙은 「완전히 성결된 삶」을 추구하는 것이었다.마태복음 5장48절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씀 때문이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까지 지극히 율법적이고 완전주의자들의 생활습관이 몸에 배었다.학교에서의 내 별명은 천사였다.누가 나를 짓밟아도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그러나 완전하게 되는 대신 죄책감의 짐만 더 무거워져 갔다.불안감도 가중돼 정신적으로도 허약함을 느꼈다.

계모가 들어왔는데 나와 동생은 엄청난 서러움속에 지내야 했다.어머니가 안계시다는 사실이 절절이 피부로 느껴졌다.고등학교 졸업 후 국문과에 가고 싶었지만 학비를 대줄 수 없다는 계모의 단 한 마디에 학비가 없는 대구동산간호학교에 입학했다.기숙사 생활을 했으므로 계모를 보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간호학교 선택의 이유가 되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67년 10월의 어느 수요일,나는 그토록 해결되지 않던 천국소유의 확신을 갖는 사건을 만났다.이 일은 신앙의 새로운 계기가 되어 주었다.〈정리=김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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