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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집 (45)

2,264 2010.04.3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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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집 (45)

요 제자양육은 새 교재를 편집 중이라서 총신대학교 강의를 위해 개발한

영의건강과 치유 교재를 그냥 썻다.

임종구, 김이식 집사님, 좀 후에 오신 강민구 교수님이 주축이 되시면서

진지함과 생명의 확신, 성장 지성적인 대화들은 지상 명령 성취의 꿈을

키우며 좋은 동역자들이 되어갔다.

예수님 소개는 물론 이거니와 사랑의 동산을 위해서도 많은 일을 했다.

동산에서는 십자가 그늘을 정리 하는 것에서부터 아까시아 나무로 십자가를 세우는 일, 늦은 밤까지 풀깍기 등 크고 중요한 일들을 팀으로 했다.

엄청난 노동자들로서 비 속에 추위 속에서 일하셨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셨고 복 주실 것을 기도하고 믿는다.

 토요 오후에는 교회 청소녀들의 제자양육인데 말씀을 꿀 송이처럼 잘 먹고 저녁도 잘 먹으며 티 없이 자랐다. 특히 강 교수님은 연극 전공으로서 청주 중앙에서 예수문화를 위한 소극장도 운영하셨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상당한 예수문화인이 되어가는 특혜도 누렸다. 


70기 개인전도전문가 훈련과 일본선교가 끝난 후 중요한 다음 일은 사랑의 동산 2차 공사였다. 예수님의 생애가 새겨지는 이 동산은 지난해 12월 소설과 대설 속에서 정말 하나님께서 친히 하셔서 1차 공사를 끝냈다.

그리고 성탄절에 대형 십자가 그늘과 함께 아기 예수님께 생일선물로 드렸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부활의 계절을 기다려서 예수님의 목공소를 포함한

갈릴리와 사마리아, 예루살렘, 부활의 빈무덤까지 완성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지난해 1차 공사를 늦가을 좋은 날씨에 시작하여 70% 이상의 재정을 쓰고, 10% 쯤 완공하고는, 일들을 저질러놓고 담당자가 떠난 후라 이제 하나님께서 친히 천사들을 동원하여 하셔야했다. 그리고 하셨다.  

지난해 12월 눈과 추위 속에 하나님께서 완공 하시던 저녁의 감격은 계속 간증이 될 것이다. 올 4월 2차 공사에서도 원수마귀의 공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영의전쟁 태세를 갖추고 있었는데 역시 전투들을 했고 또다시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승리하셨다.  

2차 공사가 끝나던 날 아침, 동산으로 내가 운전하던 레조차를 어떤 추럭이 후진을 하다가 충돌 사고를 좀 크게 냈다. 레조차는 주로 교회 마당에 주차를 하는데 이웃집 밭농사를 짓는 분이 교회 마당에 트렉타를 주차하고 통과하면서 수년 동안 여러 곳을 긁어서 민망한 차가 되어있었다.

이 사고로 터럭의 보험회사에서 레조를 새 차처럼 깨끗이 수리해 주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받아드렸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공동체에 대한 말씀도 하셨다. 예수님의 생애를 위한 미미한 기초작업 뿐인데도 하나님께서는 무척 기뻐하심에 약간 놀랐다.     


사랑의 마을 출판사 스탶들과 일 하면서 우리 모두 “예수문화의 사람들”로  살자고 글을 컴퓨터 인쇄로 부탁했는데 글씨가 작아서 읽을 수가 없었다.

그냥 손으로 크게 쓰서 부쳐보니 별로였다. 며칠 동안 궁리하는 중에 작은 현수막을 만들어서 예수문화 캠패인을 시작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예수문화 현수막이 제작되었고 안방이나 공부방에 부칠 수 있도록 보급되고 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말씀은 이런 것이다 감사하면서.

예수문화 현수막 내용은  ?  쪽에 있고 요청하시는 분들께 공급하고 있다.


한수남 전도사님이 사랑의 집을 여러차례 오가시면서 ‘사랑의 이야기’와

‘기쁨의 성장’ , ‘오늘의 크리스마스’ 를 일어로 다 번역하셨다.

일어 사랑의 이야기와 기쁨의 성장은 곧 인쇄되어 대구와 부산의 일본 선교협의회 팀들이 일본선교에 많이 가지고 떠났다. 꼭 10년 만에 그냥 글씨만 인쇄했던 것을 칼라 디자인으로 인쇄하니 예쁘다. 뿌듯하게 나눌 수 있고 받는 사람도 상쾌하다.


아랍어는 박 교수님이 모두 번역을 하셨다. 사랑의 이야기와 기쁨의 성장만 을 부탁드리고 오늘의 크리스마스는 바쁜 분께 미안하여서 부탁하지 않았는데 짧은 시간 안에 다 번역을 해서 보내신게 아닌가!

이것이 얼마나 많은 일인데! 실로 라헬이 아브라함의 종에게만 마실 물을

준 것이 아니라 그 낙타들까지 물을 먹임으로서 믿음의 조상이 된것을 떠 올렸다. 신실한 믿음의 후손들의 삶은 동일하구나 생각하며.


사랑의 마을 출판사가 함께 있으니 좋은 일이 많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2008년 7월부터 인터넷으로 월-금요일까지 왭글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의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으로 jdi의 제자양육 교재의

성경말씀에 짧은 멘트를 첨부하여 jdi 가족들에게 보내는 사역이다.

바하의 코렐음악과 함께 성경말씀과 멘트가 아침에 나가면 일터에서

그 말씀과 음악으로 하루의 양식을 거뜬히 공급받으며 승리하고 성장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왭 섬김은 올해 4월부터는 호산나 기독교 인터넷 회원들에게도 보내게 되었다. 거의 6만명에게 매일 나가는데 20% 정도가 이를

열어 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임종구 팀장이 전념을 다해 담당하신다.

   

봄에 부지런히 사랑의 동산을 가꾸고 나무를 심었는데 여름이 되니 잡풀이  한 주가 다르게 무성하게 자라더니 또 길을 막기 시작했다. 길만이라도 유지 할려고 풀을 뽑기 시작하면 몇 시간이 순식간에 가버린다.

몸은 녹초를 방불케 한다. 이렇게 주말 마다 해도 이 넓은 동산을 나 혼자

풀과의 싸움을 해 낼 수가 없었다. 어느날 드디어

 “이 동산에서 제가 할 일이 끝났음을 감사드립니다. 당신께서 이일을 위해   키우신 신실하고 유능한 분들을 다음 타자로 임명하셔서 완성하시옵소서”   기도하고 12년 만에 위임했다.


출판사의 두분 스탶의 재정지원이 되지 못해 떠나시고 나니 또다시 노동

인력이 나뿐이었다. 7년 동안 이런 상황이 반복되었으나 이제 동산의 신체

노동을 하나님께 드렸으니 내 자신에게 휴가를 주기로 했다.

이사야 56:7 의 부르심대로 오전만이라도 기도하며 휴가를 즐기려고 8월 15일 아침에 동산에 올라갔다. 마가의 옛집에서 성경을 폈는데 이사야 42:1-4절이었다. 이는 예수님의 마음과 하실 일에 대한 예언인데, 3,4절에 눈이

고정되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마음이다.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 할 것이며 . . . ”

 예수님의 마음은 상한 갈대, 꺼져가는 등불을 꺼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사람은 상한 갈대, 꺼져가는 등불은 유지하기도 힘들고 쓸모도 없어 그냥

버리고, 새 것을 구입하는 것이 쉽고 싸고 좋은 경영이라고 하는데.


이 말씀은 또한 내가 오래동안 가졌던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사랑의 집이 시작된 몇 개월 후 첫 번째 찾아 온 사람은 조실부모한 총명한여성, 정신병원을 오래 드나드는 정신허약자 였다.

그 후 지난 20년간 사랑의 집, 사랑의 마을 교회는 이러한 정신 허약자,

장애자로 점철 되었고 인력도 재원도 없는 상태에서, 기술도 부족한 상태, 오직 제자양육을 하는 하나님 말씀뿐이었는데 . . . 더 견딜 수 가 없게 되었다. 어떤 전문인은 내게 “그런이들이 끌리는가봐. 정말 그들을 보내지 않으면

무산이 될꺼예요” 내가 자문을 받는 전문인들과 실무자들은 한결같이 같은 결론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드디어 사랑의 집은 

무너져 내렸고 지금의 황폐가 온 것이 아닌가!

이렇게 시간이 더 가면 사랑의 집의 존폐뿐 아니라, 나 자신의 건강과 생명도 걸려있기 때문에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때가 되고 있었다.

이 시점에 묻지도 못하고 있는 내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대답을 하시다니 . . . 예수님의 마음을 알았다는 것과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것과는 다르지만 어쨌든 예수님의 마음을 알았다는 것으로 기뻤다.

이 말씀과 함께 나도 이것을 해야지, 계속해야지 결단한 것은 물론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이곳에 계획을 가지고 계심에 안도와 감사를 드렸다.

이 정신 허약자 혹은 상한자는 경중에 따라 엄청나게 다르지만 중증은 자신과 타인의 인생을 파산시키는데 교도소의 70% 이상이 이들이다.

세계적으로 정신병원, 정신병자가 너무나 늘어남에 따라 정신치료, 치유,

상담, 임상 심리가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치유가 잘 안되는 것이 그 심각성이다. 성경에 있는 대로 마지막 날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고, 거룩하지 않고 인간적인 자기 사랑, 즉 이기주에 빠지고, 돈과 향락을 사랑하고, 조급하고 사납고, 추하고 악하고 . .  결국은 원수 마귀의 도구가 되면서 이 고통이 가중되고 보편화되고 있지

않는가!


이날은 동산에서 결국 오전만 아니고 더욱 나에게 관대해져서 하루 종일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거의 사치스러운 휴가를 모처럼 내게 주었다.

조금 후에 20년전 jdi의 초기 제자인 이정은 권사님으로부터 제자양육을

받은 안병선 집사님이 몇 년만에 전화를 하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구인을 위한 기도모임을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날이 내가 우리나라에 돌아온지 20년이 되는 날이었다. 안병선 집사님은 일본어 사랑의 이야기와 기쁨의

성장 인쇄를 위해 교정을 보시며 마무리를 하셨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지난 7년 동안 나 혼자 견디지 못할 시점에 오면,

성경으로 말씀하시고 그의 소중한 자녀들을 데려 오셔서 다시 일어나게

하시고 또 일꾼의 여정을 가게 하셨다. 반복하셨다.  


성탄계절이 오면서 일찍 현수막들을 내걸었다. 오늘의 크리스마스

한글판과 영어판을 부지런히 만들었다. 아기 예수님께 드릴 성탄 선물이

되기 위해서. 한글판은 내 친구 고윤완 사모님이 성탄 계절 내내 대구를

중심으로 대부분 자비량으로 널리 공급하셨다. 고 사모님은 3년전 성탄 계절에 전화를 주셨다. 이때는 오늘의 크리스마스 내용의 7가지를 각각 따로,

어떤 내용은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권으로 묶고 싶었으나 재정상 하나님께 묻고 있을 때 였다. 이 때 고 사모님이 하루 7번 찬양을 좀 구입 할 수 있느냐고 전화를 하신 것이다. 이 전화를 하나님의 뜻 이라 믿고

첫 번째 오늘의 크리스마스 꼬마책, Today's Christmas(TC)를 출간하게

되었다. 그 후 지금까지 TC 꼬마책을 두고 씨름 할 때 마다 거의 항상

고 사모님은 이 꼬마책을 요청하면서 희망과 새 힘을 주셨다.

이곳에서 하나님께서 때마다 그의 순종하고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통하여

돌보시는 신실하심에 놀라 눈물의 감격을 많이 가졌다.      


영어판 TC는 아프카니스탄과 이락의 사막과 산간에서 전투하는 미군과

연합군에게 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군대라서 전달할 길을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여러 방도를 찾으면서 샘플들을 보냈는데 새해에 와서야 쿠엣과 국내 미군 부대에 보낼 수가 있게 되었다. 통역 장교인 배홍수 중위의 기도와

최선의 수고로 이것이 가능해졌다. 이 전장에서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여  현재 전쟁으로 사망하는 수 보다 자살하는 장병 수가 더 많다.

오늘의 크리스마스가가 이 장병들의 주머니에서 힘과 기쁨을 공급 할텐데, 기도가 필요하다.    


학교 방학은 교회학교의 개강이다. 한달동안 먹고 놀고 공부하는 교회인데

정식으로는 2005년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겨울 학교를 시작 했다.

그러나 전담 교사가 없으니까 내 시간을 많이 쓰게 되면서 요번 겨울에는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성탄이 지나고 5학년 총명한 남자 아이네 집에 갔더니 어두운 방에서 혼자 TV만 보고 있었다.

“하루 종일 혼자 있니?”

“아빠가 일찍 온다고 하셨어요.”

일찍 와도 저녁 6시 30분. 아침 7시 20분부터 혼자서 한방에서 한 달을 지나야 하다니 . . . 어머니나 형제들이 없기 때문에 혼자인데다 아빠의 월급으로는 학원비가 부담스럽다. 얼굴에 손가락만 대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방학이 끝나면 우울증에 빠질 것이다. 이미 너무 우울하다.

시골 나무 대문을 나오면서 나는 머리와 가슴이 얻어맞은 듯 띵했다.

“하나님, 저 총명하고 착한 아이는 부모가 있는 유복한 집에 태어났다면

 밝고 건강한 아이, 온갖 지식을 다 흡수해 낼 수 있는 아이 인데 . .

 그리고 유능한 사회인이 될 것인데, 일생 생활고와 씨름 할 아저씨가 되어야 합니까? 오, 제가 주님 안에서 저 아이에게 가졌던 희망을 포기 하고

이 상황을 받아 드려야 합니까?” 거의 비척거리면서 교회로 돌아왔다.

결정했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할 수 있기 때문에 한 것이 몇 가지냐?

거의 없다. 해야 되기 때문에 했다. 이것은 해야 되는 일이다.

다음날 겨울학교를 하기로 결정했다. 교사도 시설도 돈도 시간도 없다.

그러나 사랑의 마음과 어린이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이 계신다.


토요 지구인을 위한 기도모임에서 겨울학교를 이야기 하고 전직 교사였던 정영애 권사님께 좀 도와 달라고 했더니 기꺼이 하겠다고 하시면서 청년

자원 봉사자들을 찾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정권사님의 유능성과 전념, 청년들의 헌신, 기도 팀들의 사랑과 지원으로 한 달은 축제 자체였다.

이 총명하고 착한아이는 잃어버렸던 웃음을 곧 찾아왔다. 이 컨테이너의

착하고 씩씩한 방(교회 아이들 방)은 한달 동안 감사와 기쁨의 왁자지껄하는 방이 되었다. 청소년들도 오게 되었고 자원봉사자 믿음의 청년들, 믿음의

어머니들 모두가 예수님 주위에서 잔치의 주역들이 되셨다.


영어로 주기도문도 외우고 성경과 기타도 배우고 게임도하고 운동하고, 지구인을 위한 기도팀 어머니들이 가져오신 맛있는 것을 많이 먹고 . . .    

아이스 링크에 처음 와본 이 총명한 아이는 금방 스케이트를 배워서 쌩쌩 타고 다니면서 계속 넘어지는 나를 도우며 “교수님은 타지 않고 . . .” 기기만 하시쟎아요 를 생략했다. 재정이 또 없을 때 즈음하여 20년 전에 대구에서 제자양육을 같이하시고 미국 뉴 져지에 계시는 사공태문 목사님이 난데없이 사돈 편으로 60만원 을 보내주셨다. 얼마나 신실하신 아버지신가!

또 순종하시는 아름다운 사공목사님 가족이신가!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바울 사도의 고백대로

“우리의 고난이 넘치는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넘치는도다” 의 연속이다.     

이렇게 겨울 학교가 끝나갈 즈음에 보건복지부에서 재원을 지원해 주는

지역아동 센타를 해야 되겠다고 기도팀 어머니들이 결심했다.

맛있는 반찬을 많이 가져오신 이정은 권사님의 교회 사모님이 지역아동

센타를 잘 운영하고 계신다. 이 권사님과 사모님의 전적 도움을 받아 꽤

많고 복잡한 서류를 다 갖추어서 2월부터 아동 센타를 운영할 수 있도록

군청 에 갔다. 담당자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유는 읍내에 이미 몇 개가 있는데 인원미달 인 곳도 있다고 했다.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꼭해야 되기 때문에 보건복지부의 아이들 프로그람을 다 뒤져보니 “드림 스타트”가 있었다. 신생아에서 12살까지의 300명 아이들의 건강, 교육, 보육을 하는 것인데 결국 기본건강 가정사업이다. 농산촌에서 300명의 어린이들이라면 효율적으로 하면 70개 정도의 마을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읍이나 면소재지에 프로그람들이 집중해 있기 때문에 실재의 농산촌 아이들은 혜택을 받을 길이 없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여러 마을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일하기가 힘이 들어서 제외되고 있는 듯하다.

꼭 해야 된다고 판단하면서 70개의 마을 지역 조사를 나가서 마을과 관련 기관인 보건진료지소, 보건지소, 학교, 경로당, 교회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알고 있었던 대로 시골 교회는 가장 열악한 환경이고, 건강 관련 정부시설들은 좋은 건축물과 시설에, 인력과 기능은 별로 없었다. 어떤 곳은 몇 번

가도 아무도 없었다.


특히 보건 진료원은 내가 거제도에서 우리나라 제 1번 보건진료원인데다가 이것이 전국 프로그람이 되는 과정마다 근무를 했기 때문에 안되는 이유들을 자세히 알고 있다.

이 기본건강이 성공하려면 2가지가 필수 조건이다. 사랑과 기술이다.

거제도 3개군에서 미국 의료선교사 시브리 의사 팀들이 개척할 때는

이 2가지 성공요인에 의해서 해 낼 수 있었고 세계적인 기본건강 사업이

되었다. 이 거제도 성공을 토대로 하여 전국 3개군에서 미국국제개발처(USAID)차관으로 한국보건 개발연구원(KHDI)에서 시범사업을 할 때는

이 2가지 성공 요인은 처음부터 거의 상실되었다. 현재의 정부사업은 실패로 입증된 KHDI의 지역사회 건강사업을 신군부가 구테타 직후 정치적인 의도로 난데없이 도입한 것이다. 그 후 평가 없이 지금까지 28년 동안 왔으니

현장은 알만하다.

     

드림스타트 사업 신청서를 준비하는 동안 산촌, 농촌 마을들을 많이 다니다 보니 20대에 5-6년동안 거제도의 3개 면의 마을들과 모든 집을 찾아다니던  추억에 잡기곤 했다. 마을마다 집집마다 다니면서 아이들과 그토록 도움이 필요했던 주민들과 몹시 행복했다. 그 때는 건강교육과 의약품 이 든 건강 방문 가방을 메고 종일 걸어 다녔으나 이번에는 영원한 생명을 위해 사랑의 이야기와 기쁨의 성장을 잔뜩 차에 싣고 마을마다 집집마다 시간이 부족하니 뛰어다녔다.

한 보건 진료소를 찾아가다가 길을 잃어서 저녁때에 신월리 경로당에 들렸다. 날씨가 차니 추운 집안 대신 따뜻한 경로당 방안에 모여 가득 누워들

계셨다. 나 혼자 앉아서 사랑의 이야기를 시작했더니 한 두명씩 일어나 앉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다 일어나 앉으셨다. 이야기가 재미있다며 질문하는

분도 계시더니 마지막에는 진지하게 되시어, 도중에 나가신 몇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예수님을 영접하셨다. 하늘 잔치가 벌어진 것이다. 내가 생일

축하 노래를 하자고 했더니 “먹을 것을 좀 가져오지” 라고 하셨다.

글쎄 이렇게 기다리시는 분들이 계실 줄을 모르고.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도 방안 가득 하셨던 할아버지들이 같은 말씀을 하셨다. 겨울 경로당은 심심한 곳, 전도자와 먹을 것을 기다리는 곳이다.


사랑의 이야기를 마을 마다 나누러 다니다 보면 현저하게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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