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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들

사랑의 집 이야기 (40)

1,925 2010.09.02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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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집 (40)

2004. 10. 1 - 2005. 4. 20

2004년 5월에 우리는 대 승리를 했다.

이 곳 16년간의 사역에서 2000년부터 시작된 그 후 4년은 엘리야의 3년 6개월을 연상케 했다. 이 기간에 왕상 18장의 엘리야의 기도와 탄원은 수 없이 내게 위로와 힘을 주었다. 그리고 전쟁에 능하신 우리 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승리해 주셨다. 지난해 5월 승리의 그 날은 20년 전에 뉴욕에서내게 하셨던 말씀, 누가복음 22: 31, 32절이 이루어지던 날이었다.

예수님께서“ . . .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토록 내가 너를 위해 기도 했다 . . . ” 예수님의 기도 때문에 나는 그날 떨어지지 않고 안전권으로 들어왔다. 그 이 후, 그 신실하신 우리 주님께서는 엘리야에게 3년 6개월의 가뭄 후 소낙비를 부으셨듯이 우리에게도 그의 은혜를 부으시기 시작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유하시기 시작 하셨다. 폭풍우에서 해맑은 봄날을 맞은 내 영은 4년 만에 해마다 감격과 화려함으로 맞던 그 봄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쯔비쯔비 제비 소리와 꽃과 아침 달리기와 새벽기도와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이번에는 당연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임에 대한 마음 속 깊은 감사와 함께. 10여 년간 이 곳을 오가던 자매님도 돌아와서 생활부 일을 일부 맡게 됨에 따라 내게 시간의 여유가 좀 생기고 몸도 덜 지치게 되어 본업을 조금씩 더 할 수 있게 되었다.

조권사님과 이집사님은 변함없이 매월 마을 심방을 오셨다. 우리 교회의 마지막 남은 성도님들은 아름답게, 이제는 믿음의 뿌리를 든든히 내려가고 계셨다. 그 폭풍우를 견디어 내셨을 뿐 아니라 승리하신 성도님들이다. 인생의 늦은 후반에 예수님을 알게 된 분들도 이렇게 자랄 수 있다는 것을 보면서 이 지역 복음화로 인한 예수 문화화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

옆의 마을, 벽암리 주민들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신다.

예수 부활 축하 현수막이 비바람이 많던 날 떨어지자 다시 쓸 수 있도록 잘 묶어두고 교회 다마스가 지나갈 때 와서 다시 달아라고 요청하셨다.

우리가 부활절 달걀을 나눌 때는 마을 이장님이 차를 멈추고 와서, 마을의 어려운 분들을 도와주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셨다.

총신 대학교 선교 대학원의 “전인 건강과 예방치유,”“영의 건강과 치유”교재도 7년 만에 일단 정립이 되었다. 예수제자 연구원의 제 2부 제자 양육”과정도 25년 만에 교과과정을 재정리했다. 이런 사역의 핵심 내용은

내가 할 수 있는 종류의 일들이 아니다. 성령님께서 가르쳐 주셔야만 할 수 있고 시간과 신체적인 여유가 좀 있어야 만이 할 수 있는 일 들이다.

우리 성령님께서 이 모든 것을 다 하신 것이다. 다시 청주에서 제자 양육이 시작되면서 이 새 교과과정을 처음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

총신대학교 대학원생들도 이 새 교재 내용을 흡수하다 싶이 배우는 듯 하다.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욱 능히 넘치도록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계속적으로 우리의 기도를 크게 상회하고 계신다.

나를 소생시키시고 작지만 행복한 일꾼이 되게 하신 이 생명의 말씀을 필요한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시골에 있는 이 작은 규모로서, 또 영의 전쟁은 극심하여 이 본업을 충분히 못하는 것이 그동안 내게는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한 방안으로 행정 할 분을 좀 보내달라고 수 년동안 기도 했다. 지금 까지 우리 행정은 평균 20점 수준 인 것 같다.

사랑의 친구 제 1번이신 “이모님”의 막내 임종구 집사님이 1월에 왭사이트를 만들었다고 조심스럽게 알려주었다. 고맙게 생각을 했는데, 이 왭사이트가 JDI 섬김의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버리는 해결사처럼 빠른 속도로 진행해 가는 것이 아닌가!

첫째로 JDI의 핵심인 새 생명을 주는 많은 내용을 인터넷으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예수문화, 즉 사랑의 문화를 창조하기 위해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과 운동도 펼칠 수 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많은 부분의 행정까지 맡아버린 것이다. 나의 숙원이던 짐이 내려지는 것이었다.

왭사이트가 운용되는 첫 번째 섬김으로서 “예수 부활”축하 캠패인을 벌릴 수 있었다. 이것은 2월 21일 임종구 집사, 이제는 jdichristmas.org 왭사이트의 본부장이 결연한 태도로 부활 축하는 해야만 한다고 우리에게 그 마음을 표현했다. 우리는 지난 4년 동안 그 폭풍우의 와중에서 2003년은 못했지만 절대 성령님의 감동으로 3년 동안은 부활 스티커를 제작하여 자동차에 부치도록 선물을 해왔다. 그 영향력이 어떤지는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간절한 마음을 향기로 받으셨음에는 분명하다.

이번에는 지난 3년과는 비교되지 않는 캠패인이 시작되었다.

2만 3천장의 전문가가 디자인한 스티커와 현수막이 준비 되었고 선물을 드리기 시작했다. 처음 1만장을 선물하기 시작 했을 때 금방 80여 교회에서 신청을 해왔다. 우리는 5월까지 집중적으로 하고 성탄 축하가 시작되는 10월 말에 끝내려고 한다. 우리의 기도는 10뤌 까지 100만장의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는 소식이 우리나라에 범람하여 상식이 되고 새 희망을 국민들이 가지기를 기도 한다. “예수님의 부활 알리기”는 부활하신 새벽부터 시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듣는 사람마다 가만히 있지 않았고 톱뉴스로 빨리 알리기 시작했다. 부활축하 캠패인에 대해서는 jdichristmas.org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이런 기쁨과 감사의 잔치와 함께 거의 늘 그랬듯이 재정이 또 없었다.

전혀 없는 것이 아니고 내일 까지 지불해야 되는 스티커 인쇄비용, 송료, 왭사이트 서비스 비용, 공과금, 빌려주신 컴퓨터는 다운이 쉽게 되고 . . .

빌린 컴퓨터로 왭사이트를 만들고 전국적인 캠패인을 하다니 . . .

그런대도 성공적으로 왭사이트가 운용되면서 꿈이 점점 커지게 되었다.

포탈로 가는 꿈이었다. 이것은 정말 큰 일이다. 이것은 우리나라를 돕고,

세계를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매일 매일 내일 까지 지불해야 되는 날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신뢰에 의해서 살아왔다. 이분들에게 신뢰를 지켜야한다. 그런데 매일 그것이 지불되어졌다. 우리는 이번에도 완전히 이 모든 분들에게 신뢰를 지켰다. 나 자신이 이해 할 수 없는 방법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통해서 바로 그 마지막 시점에 지불하시기를 계속적으로 하셨다. 지난 16년 동안 하셨던 대로. 내일 일은 내일이 보살피도록 하라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다고 하신 주 예수님의 말씀은 이 과정에서 나를 평안하게 하셨다. 그의 자녀를 보호하심에 나 자신이 의아 할 정도였다.

앞으로 인터넷 섬김을 계속 하려면 재원이 많이 있어야한다.

이렇게 불철주야 생각하고 기도하고 일하는 팀을 낙심시키지 않으려고

나 혼자만 밤낮으로 하나님께 아뢰고 궁리를 했지만 이제는 솔직해야 할 시점에 온 것이다. 마지막 현금 얼마를 이들에게 주면서 이것이 끝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1가지 덧 붙혔다. “이런 일은 우리에게 많이 있었습니다.”

방법은 1가지 뿐이다. 그런데 확실한 방법이다.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 하는 것이다. 부활주일 까지 2-3주 동안 특별 기도를 하기로 했다.

2년 전에 중국에 갔을 때 카나다에서 오신 한 선교사님이 내게 재원이 얼마든지 있다면 무엇을 하겠느냐고 물어셨다. 나는 주저 없이

“인터넷 ministry를 할 겁니다.“ 라고 대답했다. 꿈 같은 일이지만.

그런데 이 꿈같은 섬김을 기도도 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가져오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다면 임 본부장을 불러오셨듯이 재원과 그의 선한 일꾼들을 불러 오실 것이다. 아버지께서 하시지 않으실 일을 내가 아쉬워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아침 금식도 하며 부활절 까지 기도가 계속 되었다. 부활주일에 요 7: 37-39까지를 읽으면서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우리 주님께서 서서 크게 외치시던 말씀을 나누며 즐겼다.

“ . .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니 이는 믿는자 들이 받을 성령을 가르치심이라.” 그리고 1 주일이 거의 지난 토요일 인터넷 섬김을 두고 우리 3명 팀은 총체적인 계획을 긴 시간 세웠다. 사실 2년 전에 해둔 것 이었는데 예언자적인 기록처럼 지금 상황과 맞았다.

모든 계획은 다 의논 되었고 이제 재정 부분만 남았다. 모두 할 말 없다.

전화가 왔다.

“ 저 김영자 사모 인데요. 안녕하세요?”못 본지가 몇 년 된 것 같았다. 소식이 궁금했는데 반가왔다. “신광교 목사님이 오래 전에 그 산을 팔면 3분의 1을 JDI에 헌금하기로 하셨죠? 그 산이 팔렸어요. 바로 송금 할께요.”

신 목사님은 15년 전 사랑의 집, 지금 사랑의 마을 교회를 그 절박 했던 시절에 친구들을 동원하면서 특이한 과정으로 지으신 분이다. 그 때는 대기업 건설회사의 차장이셨다. 그 후 신학 대학원을 가시면서 그의 재산을 하나님께 헌납한 것인데 나는 거의 잊어버렸다. 지금은 우리처럼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따라 살아가시는 주의 종의 가정이다.

월요일 은행에서 송금을 확인 했을 때,

그것은 5천만원이었다.

jdi는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후원을 받아 본적이 없다.

더구나 그것이 하나님의 종(Servant Leader)으로부터 라니.

이 헌금에 손을 대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쓸려고 계획 하셨다 라는 말씀을 정확하게 듣기 전에는. 하나님 것의 관리를 내게 맡겨 주신 것에 대해 약간의 두려움이 생겼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 인데 신 목사님의 경제 여건은 jdi와 비슷하기 때문에 혹시나 시험에 들까봐 곧 바로 전화하고 송금하신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하여 다시 1만 3천장의 부활 알리기 스티커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새 컴퓨터와 복합기를 구입하고 인터넷은 새 싹처럼 생명이 돋아나고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우리가 폭풍우를 통과 하는 기간에 유년 주일학교는 무산이 되었다.

그 전에 열심히 교회에 나오던 두 형제의 아버지가 20년 실형을 받고,

할아버지와 손자 둘, 3가족이 사는데 집은 채무자에게 넘어갔다. 의리 있는 이장님의 주선으로 마을주민들이 컨테이너 집을 마련해 주셨는데 얼마나 관리를 잘 하시는지 깔끔하고 편리하게 해 놓으셨다. 그 고모가 예수님을 잘 믿어서 큰 힘이 되고 우리도 사랑의 실천 가정의 대상으로 꾸준히 해왔다. 이 가정이 이 고난 중에 다시 교회로 돌아오게 되어 안심이 된다.

오늘은 읍내에서 하교하는 둘째를 만나서 시장을 같이 좀 보았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 이 청소년들은 끊임없이 무엇이 먹고 싶을 테니까 밀가루와 달걀, 설탕, 베이킹 파우다를 넣고 빵떡 혹은 고급스런 말로 핫케익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려고 생각했다. 또 무엇이 필요한 것이 없느냐고 물으니 샴퓨가 필요하다고 해서 큰 것을 하나 쌋다. 할아버지는 70세에 일용직을 나가시고 부엌은 깨끗했다. 할아버지의 일용직이 오직 생활 수단이다.

이 형제들이 핫케익을 만드는 법을 배우면서 그 얼굴에 행복이 번져 가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떠나기 전에 기도를 돌아가면서 하자고 했더니

형은“예수님, 이렇게 즐거운 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생은 “ 하나님, 오늘 이렇게 좋은 오후를 감사합니다.”하고 기도 했다.

빵떡 하나의 행복.

행복과 감사가 얼마나 작은 곳에 있는지.

나도 기도 했다. “꼭 주 예수님께서 이 아이들을 키워 주셔야 합니다.

이 가정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셔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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