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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들

사랑의 집 이야기 (2005. 4. 21- 2006. 7. 31)

1,872 2010.09.02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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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집

2005. 4. 21- 2006. 7. 31

일년간이나 쌓인 사랑의 집 이야기는 많다.

그러나 먼저 요즈음 이야기를 하나 쓰고 싶다. 이는 우리의 감사와 영의 전쟁이 특이하기 때문인데 이런 승리들이 최근에 사랑의 집에 한꺼번에 있어서 우리들의 감격 수위는 매우 높다.

17년 동안 절에서 중 생활을 하던 주지승 가족이 예수님께 돌아온 이야기다. 이 절은 이 지역에서 꽤 많이 활용되어서 지옥의 통로 역할을 상당히 해왔다. 지난해 5월, 83세에 그의 마지막 3년을 하나님의 딸로서 행복하고 아름답게 장식하고 소천하신 한정교 성도님이 수 십년간 정성을 쏟았던 절이기도하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이 절을 많이 이용 했다. 지금도 한다.

이 주지승의 어머니는 80대의 할머니로 그 절의 경영자셨고 며느리는 그 큰 살림을 홀로 살아낸 고달프기 짝이 없는 인생이었다. 더구나 이가 별로 없어서 음식을 잘 먹지 못해 몸이 허약 한데다 영육의 공격이 심하기 때문이다.

이 가족이 그 절을 운영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뿐이었다. 돈 때문이다.

논 몇 마지기를 팔아서 이 절을 샀는데 논농사 보다는 절에서 나오는 수입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정은 정말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오직 셋째 딸이 홀로 중학교 때 친구의 전도로 예수님을 믿고 목사님의

사모님이 되셨다. 10년전 jdi 연구원에서 개인전도 전문가 훈련 때 첫날

저녁 시간이 끝나자 말자 다급하게 절의 어머니께 예수님을 전하러 가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어리둥절했으나 택시를 타고 급히 갔고 어머니는 그 밤에 사영리를 공부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하나님의 딸이 되셨다.

그리고는“부처님께 미안해서 아침에 어떻게 밥을 가지고 가지. . ?”하셨다.

그렇지만 이 절 사업을 그만 둘 수가 없었다. 아들들이 마땅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출가하고 불교에 귀의하여 수행을 하면서 인간의 도를 닦는 것과는 상관없는 상황이다.

그 셋째 딸 사모님과 사위 목사님의 기도는 참으로 절실했다. 패가망신되어가는 친정을 위해서. 우리 기도 팀들도 함께 기도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완전하신 방법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방법으로

손자, 손녀와 함께 이 가정을 그 불 속에서 화상을 입은 채로 끌어내셨다. 급한 치료, 영육을 양육, 환경, 이사 짐 정리 뿐 아니라 특히 처리해야 할 일은 많다. 이 한 달 동안 우리는 이 응급가정을 안정권으로 넣느라고 정력과 시간을 많이 썼다. 그 주요 이유가 영의 전쟁이 시작 된 것이다.

그렇게 오래 자기에게 충성했던 가정을 빼앗기고 마귀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우리는 이 복음 적대 지역에서 17년이 넘도록 이런 전쟁을 많이 경험했고, 싸웠기 때문에 이제는 전투병이 되지 않았는가!

이 가정으로 인한 원수의 여러 가지 공격 중에는 채 목사님이 심어서 잘 자라는 옥수수를 다 뽑아 버리면서 첫 예배를 방해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주지승 부부가 치열하게 싸우는 것, 절을 인수한 할머니가 중으로 다시 데려가려는 것, 나를 아프게 하는 것 등등 이었다.

나는 일 주일 이 넘도록 온 몸이 설명을 할 수 없게 따갑게 아팟다.

원인을 추측 할 수가 없어서 병원에 가도 진단을 할 수 없는 줄 알아서 가지 않았다. 이유도 없는 이상야릇한 이 아픔을 혼자 기도로 견디다 못해서 토요일 제자 양육 새싹들께 평생 처음으로 내게 손을 얹고 병이 낫도록 기도 요청을 했고, 모두 진실로 기도했다. 그 다음날 주일에는 한꺼번에 원수 마귀는 너 댓가지로 공격해 오고 있었다. 이때사 이 모든 어려움들이 악한 영의 간계한 대적인줄을 깨달았다. 오후 2시 마라나타 예배가 30분이나 늦어져도 나는 한나 방에 숨어서 나가지 못하고 기도해야했다. 정각에 예배를 드리려 나가면 교회 옆 밭의 그 으그지 사나운 할머니가 고성 방대로 싸움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이유는 없다. 경찰이 와도 독백 저주가 한참 더 가기 때문에 빌 1:28절을 순종하고 성령님께서 처리 하실 때 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 때야 비로소 확실히 알았다. 내가 따갑게 아픈 것은 마귀가 하는 짓임을 포함하여서. 확신을 가지고 낫도록 단호히 기도 했다.

몇 시간 후에 완전히 나았다. 영분별(Spiritual discernment)은 하나님의 일꾼들에게는 참으로 중요하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들 성도 부부는 사랑스럽다. 주기도문을 외우고 사도신경을 공부하고 십계명을 외우고 날마다 교회에 태워 오는데 교회 안팎과 채소 밭을 깨끗이 가꾸었다. “ 교회에 오면 마음이 평안해요.”그들의 행복과 안도와 감사를 보면서 영의 치열한 전쟁을 좀 더 상세히 이해하게 되었다.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내 모습 이대로 받으셨네 . . ”

노래도 빨리 배우고 크게 부른다. 중3 과 1학년 남매는 분당 할렐루야 교회에서 주관 하는 청소년 여름 수련회에도 갈 것인데 한 강도사님이 이 사정을 듣고 등록비도 면제 해 주셨다. 강 교수님이 십자가 목걸이를 주지 승

역임 박 성도님에게 선물을 해 주셔서 목에 걸었다. 얼마 전에 승복을 입고 돌덩어리 앞에 왔다 갔다 하던 모습이 선하다. 하나님께서 사람 바꾸시는 것을 보라. 물론 계속적인 씨름과 작업은 많다. 완전한 치유와 회복, 성장은 시간이 걸리고 성령님의 힘으로 사랑과 지식과 기술이 많이 필요 하다. 특히 이처럼 복합적인 문제와 장기화되고 응급 상황이 일어나는 가정에는. 그러나 불러내신 성령님께서는 완성 하실 목표로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믿고 수고를 각오하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모두가 볼 것을 믿는다.

이 가족이 이 지역에서 사랑의 친구 전도자로서 주 예수님의 증인의 삶을 살 때 많은 진천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사람 사랑하심을 알 것이다.

이들을 태우러 그들 마을 골목에서 기다리는 동안 이웃 집 할머니 한분이 예수님을 영접했고 다른 할머니도 곧 하실 상태에 왔다.

2005년도 부활절부터 유년주교 와 중등부 아이들을 내가 직접 가르치게 되었다. 3명부터 다시 시작이 되었는데 어머니가 없는 아이들이라 먹이고 식품을 구입해 주는 일은 교회 학교의 주요 프로그람 중 하나였다. 13 여년 전에 70-80명의 어린이, 중고등부 시절을 회상하면 그동안 우리들의 전쟁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새삼스럽다. 그 때 아이들은 이제 도시에서 어린이집 교사도 하고 교회학교 교사도 하며, 어른들은 목사님도, 집사님도 되어 충성하니 주님의 지상 명령 성취에는 손실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고달플 때가 있다. 여름 성경학교를 나 혼자 또 어떻게 할까 궁리하다가 아버님 께서 섬겼던 교회 출신 이 권사님께 이야기를 했더니 기꺼이 성실한 두 자녀들과 강 선생님 부부를 모시고 먹을 것을 잔뜩 준비해 가지고 오셨다.

천로 역정도 하고 강물에 목욕도 하고 주 예수님을 배우고 노는 즐거운 추억을 남기는 여름 성경 학교였다.

이 새로운 불이 계속 타가기 위해서 교회 학교가 나의 1차 사역이 되다 시피 했다. 이 아이들을 진실로 사랑하고 가르칠 선생님이 올 때까지. 이들이 빛과 소금의 결단을 축하하려고 3500원 짜리 브폐를 청주에 가서 먹기도 했는데 아이들이 너무 많이 먹고 너무 좋아해서 이러한 식당을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드렸다. 여름 수련회는 태안 바닷가 교회에서 가졌는데 바다를 처음 보는 아이들도 있어서 소리를 너무 계속 질러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을 때가 있곤했다. 3대의 차가 움직이는데 운전이 또 문제 였으나 신 목사님 부부와 10여 년전에 떠난 권 간사님이 방문을 오게 되어 모두 동원이 되었다. 돌아 올 때는 아이들이 차에서 밤중에 대중가요를 얼마나 신이 나게 잘 부르는지 위기가 느껴졌다. “ 노는 것도 적은 일이 아니야 . . .”등

어떻게 이런 노래를 배웠느냐고 물었더니 휴대폰으로 이어폰을 통해 최근 노래와 무수한 노래를 금방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중가요의 가사들은 아이들의 영을 살리는 것이 결코 아니요 죽음으로 혼돈과 중독을 시키는 것이다. 우리의 교회는 패전하고 잃고 있다. 일 주일에 두세 시간의 예배와 프로그람으로는 일 주일 내내 스며들고 범람하는 세상의 죽음의 문화를 아이들나 어른들이 이길 수가 없다. 교회 교육의 전격적인 변화가 없이는 이 전쟁에서 우리는 패전 할 것이다. 이것은 심각하고 시급한 과제 이다.

이 아이들이 일생을 통해 겪을 혼란과 고통, 이 민족의 장래. . .

오 주님, 도우소서. 추수 밭은 희어져 있고 할일은 태산 같고 하면 되는데 일꾼이 너무 적습니다. 있는 일꾼들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경우가 많구요.

우리 마을에서는 방학이 되면 일이 시작된다. 그래서 나의 학교의 방학은 마을의 개학이다. 아이들이 마을에 갇히다 시피하여 종일 수시로 교회에 오기 때문에 나의 시간은 짜투리가 되어 방학 동안에는 시간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그래서 아예 교회에서 1월 한달 겨울 학교를 하기로 했다. 어떻게 할지 아득 하여 준비 기간동안 주로 기도를 했는데 성령님께서 친히 계획하시고 주도하심을 체감 했다. 하루 일과에서 사랑의 이야기와 기쁨의 성장을 외우고 하루 성경을 5장씩 읽고 간식을 먹고 운동을 하고, 격주로는 특별 프로그람을 했다. 유관순 열사 생가와 기념관, 독립 기념관도 방문하고 씨 에스 루이스의 영화 크로니클스도 관람하고 청주 국립 방물관도 갔다. 특히 대학교를 방문했다. 아이들이 대학교를 갈 생각은 거의 않기 때문에 도전을 하려고. 아이들은 나의 기대 이상으로 영화에서도 핵심을 잡았고 대학교 운동장을 어두움이 내리는데도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니면서 진학의 도전을 받았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들이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얼마나도 소중히 여기실까!

68기 개인전도 전문가 훈련생은 전원 복음 적대국에서 온 전도자들이었다.

이분들은 미국의 선교단체의 지원으로 이곳 예수제자 연구원(jdii)에서 1차 훈련을 받게 되었다. 값비싼 해외 교육이고 그 영향력은 그들의 나라에서 클 것이다. 비중이 큰 만큼 성령님의 역사하심도 크셔서 훈련이 끝나 가면서 대단한 배움, 확신, 소생, 기쁨, 헌신이 충만했다. 막연했던 것들에 대한 실체, 퍼즐 같은 것들의 정리, 섬김의 기술, 결단, 이제 돌아가서 어떻게 해야 될지 등을 간증하는데 나는 놀랐다. 그 책임자에서부터 모두 눈물겨운 회개와 함께 결단하시는 모습을 보고 성령님께서 이렇게 까지 하시는구나 하여 감탄했다. 지구 위 모든 하나님의 일꾼들이 주님 앞에 서는 날 우리는 기쁘고 어리둥절 할 것 같았다. 이렇게 지구 곳곳에 하나님의 일꾼들이 신실하게 생명을 드려서 순종하고 있으니 실로 성령님이 총 사령관이 심에 안도가 되었다. 우리는 각자에게 부탁하신 일에 착하고 신실하면 되지 않는가!

무엇보다 일 이전에, 하나님 나의 주님을 사랑하는 것, 이뿐인 것을.

우리가 일을 한들 얼마나 할 것인가,

69기 개인전도 전문가 훈련생들은 국내 목회자 부부들 이셨다.

이 분들은 전원 교회건축, 도시 개발 지역에 넓은 토지 매입으로 대출 이자상환, 교회 성장의 둔화 등으로 몹시 지치신 분들이셨다. 아픔과 혼돈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다. 어떤 돌파구를 찾고 계신 분들이셨다.

연구원의 교과 과정은 근본적인 과제 즉 하나님과 나와 사람과의 사랑의 관계를 교육한다. 개인전도 전문가 훈련은 사랑하기 때문에 건강한 나무에서 자연적으로 맺는 생명을 살리는 열매이다. 교회의 수적 성장과 그로 인한 재정적 윤택이 목표는 아니다. 이것들은 따라올 수도,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입으로 손으로 순종할 뿐이고, 우리의 필요는 좋으시고 부유하신 아버지께서 그의 방법대로 매력적으로 자녀들에게 공급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사람을 섬기는 것과 경제적인 공급은 근원에서 이원화되어 있다고 믿으므로 우리는 그렇게 살고, 가르쳐왔다.

이 훈련생들 중에는 넓은 토지 구입과 다른 4분 부부는 4박 5일 훈련비 합계 60만원 중에 합계 2만원을 내셨다. 그리고 그들의 당면 문제를 안은 채 5일 후 조금은 휴식한 듯 허리를 굽혀 절을 하시고는 좀 혼돈한 채 떠나셨다. 우리가 얼마나도 비본질적인 것 때문에 본질적인 것을 잃어버리는가!

주요 이유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비 본질이 너무 견고하면 진리가 옆에 있어도 잡지 못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성령님이시여, 도우소서.

사랑의 집은 50여년 전에 지은 전형적인 시골 흙집이었고, 사랑의 마을교회는 기둥이 없는 흙벽 돌 꿩 집이었는데 당시 415만원에 구입하여 개축하고 16년째 잘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수리는 “헌집 고치기”식이라 끊임 이 적다. 그리고 초기에는 비올 때나 전기, 보일러 기름을 아끼느라고 동파가 잦는 등의 문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요새는 스트레스는 훨씬 적게 받는다. 그 이유는 이런 집을 이토록 오래 큰 재난 없이 쓰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쓰게 하시는 아버지께서 고쳐 주실 것이라는 믿음도 생긴데다 하도 고치다 보니 지식도 조금은 생겼다. 그런데 심야 보일러 물통이 몇 년 전부터 조금씩 새기 시작하여 땜질을 하여 썼는데 이제 너무 많이 새서 전기 요금이 오르기 시작했다. 교회는 겨울 내 보일러가 가동되지 않아서 정말 추웠다. 중부 지방은 춥고 눈이 많이 온다. 부엌 보일러도 동파가 이번 겨울에도 두어 차례 있어서 기술자를 불러 고치면 비용도 꽤 들고 신뢰도 문제이다. 두 차례나 쓸 수도 있는 보일러를 교체하고 설비비도 더 받아 간 것을 후에 알았다. 그러던 중 2002년 1월에 기독교 방송 새롭게 하소서를 듣고 오 집사님이 우리를 아시게 되어서 가끔 연락을 주시곤 했다.

“보일러와 심야 보일러 물통을 어떻게 하죠?”하나님 아버지께 얼마간

묻고 있었는데 오 집사님 부부가 찾아오신 것이다. 오 집사님은 신실하고 책임감 있는 설비 기술자이시다. 심야 보일러 물통은 청주에 알아보아서 쓸 만한 중고로 거의 1/3 가격으로 교체 하시고, 보일러는 최선을 다 하셨으나

여름이 될 때 까지 기다려서 원인을 찾기로 했다. 그 외 무슨 설비, 관리 문제든지 의논 하면 원거리에서도 바로 오셔서 해결 하시곤 한다. 고질적인

설비 문제가 해결된 것은 큰 스트레스 하나를 내려놓게 하신 것이다.

변 선생은 2001년에 개인적인 어려움을 당해 사랑의 집에 8개월간 있으면서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안정이 되면서 생활터전으로 나갔다. 힘이 들면 다시 이곳에 와서 수 개월 영육이 회복되면 다시 나가서 힘껏 살곤 하신다.

이번 가을에도 다시 내려와서 일년 가까이 제대로 돌보지 못한 교회 뜰과 채소밭, 집 전체를 확실한 솜씨로 말끔하게 하셨다. 그리고 교육관과 사무실, 기도하는 방 컨테이너 3동을 초록색으로 섬세하게 페인트를 하셨다.

교회 전체를 새 단장 시키고 다시 생활 터전 서울로 올라가셨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다시 심신의 회복을 위해 다음주에 내려오신다.

2004 사랑 새싹 모임은 2004년 가을에 시작 했다. 고 해종 과장님이 시작하신 것이다. 초기 jdi에서 많은 순 모임이 있게 되면서 소속을 알기 위해서 제자 양육을 시작한 년도와 순장은 예수님의 인격 명칭을 따라서 이름을 짓도록 이 정자 사모님이 제안 하신 적이 있다. 그에 따라 나의 인격 명칭을 사랑이라고 스스로 짓고 순은 이사야 11장처럼 한글로 표기 하여 새싹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새싹 모임의 리더는 이름이 좀 길고 아직은 어색하지만 의미가 잘 전달되므로 종된 지도자(Servant Leader: SL)로 부르기로 했다.

고 과장님은 17년 전 이모님과 함께 처음 사랑의 집, 전설의 고향 집에 왔을 때 대전 출입국 관리소에 근무 하시면서 나를 조사하러 오신 공무원이셨다. 당시 내 비자는 여행 비자인데 아세아 연합신학 대학원에 초빙교수로 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권위를 주장하지도 않으셨고 12년을 주인이 살지 않아 폐옥이 된 “전설의 고향 집”을 시골 집도 이렇게 하면 잘 쓸 수 있겠는데요 하고 좀 조사를 하시고는 담배를 피우면서 마당을 한바퀴 돌고 떠나셨다. 그리고 나는 대전 출입국 관리소에 심문 비슷한 조사를 받으러 갔다. 그런데 그 곳 직원들은 내게 특별대우를 해 주셨다. 고 과장님이 좋게 말씀을 해 두셨던 것 같다. 물론 권고 출국을 당하긴 했으나.

그리고 세월은 흘러서 12년이 지났고 나는 다시 거류 신고를 하기 위해서, 위석을 앓은 직후 몹시 여위고 힘은 거의 없고 까맣게 탄 피부 상태로 대전 출입국 관리소에 갔다.

그런데 사무실 저 쪽에서 반가운 음성의 “채 박사님 아닙니까? 저를 아시겠습니까?” . . . 아니, 고해종 과장님이 아니신가! 나는 12년 전의 그 고마운 기억을 잊은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고 과장님은 이 공공 기관에서 선교사 로 임명 받은 분 같았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얼마나도 주님을 사랑하고 직원들에게 전도하고 양육 하시는지 . . .

우리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섭리에 감격했다. 고 과장님의 사모님이 아파트 위층의 권사님으로부터 전도를 받고 남편을 예수님께로 인도한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 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라는 말씀의 실현이셨다(고 후 1:21). 그 권사님은 하나님의 사도이다. 고 과장님 부부의 믿음은 변함없는 주님과의 밀월이다.

얼마 전에는 사랑의 집에 오셔서 주님의 마음과 멀어지는 한국 교회를 이야기 하면서 우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셨던 것이 기억났다.

어쨌든 고 과장님의 주선으로 새싹모임이 금요일마다 사랑의 집에서 시작되었다. 그 중 한분은 한국 도자기 박 이사님이셨는데 첫 기도에 잘 끝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이 모임에는 채형기 목사님까지 참석하시기 시작 하셨고 사실 새싹은 아니고 종된 지도자 모임 같았다.

그러나 보라, 하나님이 일하시면 항상 마귀도 일한다고 신앙의 선배들이

경험담을 말했지! 박 이사님이 갑자기 심장 문제가 생겨서 수술을 받으셨다. 회복이 되는 듯 하더니 후유증이 생기기 시작 하여 결국 조기 은퇴를 하시게 되었다. 결국 박 이사님은 백화점처럼 다양한 jdi 그릇 들을 고급 한국 도자기로 넉넉히 바꿔 주시는 일로 새싹 모임이 1차는 끝난 것이다.

그 외에도 공격은 계속되더니 결국 새싹 모임이 없어지는 듯 하더니, 임종구 집사님만 남더니 씨드 바이오 칲스 사장 김이식 집사님이 들어오시더니 변함없는 코디네이트 역할을 하시면서 그 회사의 역경을 통과하는 과정에 믿음이 점점 더해지셨다. 그리고 다른 분들도 오가시고 최근 연극 영화 전공 강 교수님이 들어오셔서 우리가 기도 하던 예수문화의 구현이 더 현실화 되어 가고 있다. 이런 과정의 새싹 모임은 25년 만에 처음이다. 물론 여러분들의 요구에 의하여 교재를 jdi 교재로 바꾸었는데 완본이 나오지 않아서 산만하기도 하지만 내용은 진전 되었고 체계적이고 포괄적이다.

우리 10명이 다시 모여서 완성된 교재로 총 정리를 하고, 종된 지도자가 되시고, 지구인을 위해 함께 기도 하며 재생산 하고 예수문화의 주역들이 되실 것을 기도한다. 그리고 믿는다. 왜냐면 지금까지 그렇게 되지 않은 새싹

모임은 수십 회 중에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령님의 소원이시고 부탁이시기 때문이다.

2005 사랑 새싹 모임은 주님을 특별히 사모하시는 여성들이다.

시작 전에 시 68:11도 주셨다. 그런데 가정 문제가 특별하여 절실한 기도가 있는 분들이다. 이 믿음의 여인들이 승리할 것을 기도하고 믿는다.

고구마를 캘 무렵에, 10년 전에 재자양육을 받고 노숙자 사역을 하시는

구 집사님이 쪽방에 사시는 분들을 모시고 왔다. 사랑의 집의 부엌방, 6평 쯤 되는 아름다운 방 이라 이름하는 방에 들어오시면서 환호를 했다. 너무나 넓다고. 자신의 방은 한 평이 되지 않는다고 했든가? 불편한 다리로 고구마를 캐면서, 사랑의 동산을 이리 저리 뛰면서 낙엽도 줍고 은행을 줍는 행복에 겨운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찡하게 했다. 고향에도 돌아가지 못하는 분들, 이른 고구마를 캐는 행복과 한 자루 묶어 차에 실는 모습은 실향민이

고향을 찾은 기쁨을 보는 듯 했다. 얼마나도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인 모든 것을 가지고도 감사치 못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는가!

2005년 성탄 축하는 우리의 기도를, 특히 시카고 그레이스 교회의 홍 장로님목장의 목원들의 기도를 이루셨다. 2004년 성탄에 마을 군부대에서 성탄 축하예배를 16년 만에 가장 조촐히 드렸다. 젊은 장병들의 영혼은 준비되어 있었다. 많은 분들이 예수님을 영접했으나 양육 때문에 홍 장로님과 목원들께 기도 부탁을 드렸다. 2005년 군부대 성탄 축하에는 2005 사랑 새싹모임의 청주의 집사님들이 주도하시어 교회 어린이, 청소년들, 찬양, 연주자들, 율동 팀들이 동원되고 간증과 먹을 것도 많았다. 17년 만에 가장 성대했다. 부대의 장병들 거의 전원이 예수님을 영접했을 뿐아니라 축하 하러 오신 모든 분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최대로 즐거워했다. 성탄 메시지는 인류의 모든 인생을 전환할 메시지니까. 역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기도를 들으신다.

2006년 새해의 나의 기도는 “ 아버지 하나님 올해는 제발 정상이 좀 되게 해주십시오.”였다. 한 때 나는 이렇게 살다가는 정상적인 사람들과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잊어버리겠다는 약간의 걱정이 지나간 적이 있다.

대단한 것은 요청하지 않으니 잠시나마 정상으로 한번 살게 해주십시오 의 기도는 어떻게 되고 있는가?

3월이 되어서 유행 패튼을 별로 따르지 않는 나도 처음으로 이 전쟁이 너무나 장기화 되니 하나님 것이라면 패튼이라도 따라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 동안 차고 넘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과 내 마음의 평화와

기쁨 뿐이였다. 사실 이 여리고 작전 생각은 새벽에 성령님께서 주신 것이라 본다. ‘80년대부터 우리를 큰 사랑과 함께 온갖 지원을 해 오신 몇 분

동역자님들도 이제는 얼떨떨하여 말을 잊으신 것 같다. 우리의 씨름이 너무나 장기화요 인간적으로 보면 비극적이기 때문이다. 욥을 위로하러온 좋은 친구들 같아 보인다. 이미 여러 동역자님들이 안타까움과 함께 뒤로 물러 나셨다. 나는 욥기와 모세의 삶과 요나서 2장을 많이 읽었다. 이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끝까지 순종을 하기 위해서였다.

돌이켜 보면 jdi의 사랑의 친구 전도자 이론은 실재로 1995년에 이미 성공적으로 완성 되었다. 그 당시 이미 수 백명의 주민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셨고 사랑의 마을 교회의 어른들은 재적 30여명 이었으나 어린이, 청소년들을 합하면 100명이 넘었다. 사랑의 마을 교회를 거치지 않은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은 거의 없었다. 예수제자 연구원은 14기가 졸업을 했고 개인전도 전문가 훈련도 수 십기가 수료됐다. 기본적인 교육자료인 비디오, 오디오 가 완성되어 국내외에서 꾸준히 공급되었다. 주일 설교 테이프도 국내외에 잘 공급되어 jdi 재정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한 때 나 자신에게 “ 복음 적대 지역에서 사랑의 친구 전략이 이렇게 쉽게 성공하는가 ?”스스로 의아해 한 적도 있다.

그러나 ‘95년 이후부터는 우리가 잘 모르는 새로운 이론이 이 곳에서 실험 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이론은 좀 더 정립을 해야겠지만 내가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extra grace로 계획하신 것이고 extra grace의 보호와 인도하심으로 그 후 10년 이 넘도록 우리를 이끄시고 이 곳까지 승리해 오신 것이다. 이 쯤 되니 여리고를 무너뜨리시는 방법은 이상하지만 오직 하나님께서 친히 하셨기 때문에 됐다는 것은 확실히 이해가 되었다.

사람의 어떤 전략으로도 그 견고한 성이 무너질 방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지역과 jdi의 섬김은 정말 여리고 성 같다. 3월 22일 여리고 전략이

시작 되어 나의 비교적 빠른 죠깅 으로도 이 지역을 한바퀴 돌아오는 데는 1시간 10분이 걸렸다. 시골의 6개의 자연 마을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보지 못하도록 새벽 4시를 택했다. 학교에 가는 날은 새벽 3시를 좀 넘어서 골목을 뛰면서 아는 집들을 위해서는 특별 기도를 했다. 거의 대부분이 아는 집들이다.

아마 이 거리가 여리고 성의 실재 거리와 비슷한 것 같았다.

60만 대군이 매일 행진을 했다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무엇 보다 마지막 날 7바퀴가 과제이다. 몸이 지쳐 가면 12시간 이상 뛰어야 되는 것 같았다. 걸으면 하루에 다 돌 수가 없다.

그런데 내가 왜 이런 엉뚱한 일을 하지 라는 자문은 없었다. 수 많은 사랑의 친구 전도자들이 세계, 복음적대 지역으로 가야 되지 않는가, 이 분들은

지역을 선정 한 후, 먼저 여리고 작전 기도부터 하여서 적을 무장 해제 한 후 사랑의 섬김을 해야 한다는 확신이 오히려 더해 졌다.

나 혼자 마지막 날을 완주 할 자신이 없어서 구 집사님께 도움을 청했더니 서울에서 내려오셨다. 채형기 목사님과 구 집사님도 뛰고 걷고 하셨다.

마지막 날은 새벽 3시부터 시작했다. 낮에 같은 주민들을 반복해서 만날 때 할말이 문제였다. 처음에는 운동하는군요 로 대화가 됐지만.

기도는 하다가 말다가 . . . 7바퀴를 다 뛰고 걷고. . . 밤 10가 넘어서 손 전등을 들고 논길을 살살 기다싶이 하여 교회에 도착하니 캄캄한 하늘에서 소낙비가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두 다리가 우리 다리가 아닌 것 같았다.

하나님께 몹시 감사 했다. 무사하게 다 이룬 것에 대해서. 이제 하나님께서 약속 하신 그 많은 말씀들을 수행하실 것 같은 시점이라는 생각도 하면서.

그런데 이것 보라, 발이, 몸이 한 주일이 넘도록 꼼짝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날 아침에 거제도에서 인터뷰 할 분들이 오셨는데 우리는 끙끙거려서 이분들을 당황하게 했다.

6년 동안 번역했던 Where there is no doctor 가 1년에 걸친 작업 후

출간이 되었다. jdi 초기 새싹들의 간증 집 “그의 손길 그의 숨결”도

예쁘게 3쇄가 출간 되었다.

지난 3년 동안에 이 곳에 사역자가 없었다. 내가 견딜 수 없을 때 쯤 되면

예기치 않은 분을 데려오셔서 내가 신체적으로 회복 이 좀 되게 하시고는 데려가시곤 하셨다. 이렇게 몇 번 하셨다. 참으로 영육에, 사역에 생존과

직결 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시간의 여유가 없었다. 새 일은 시작하지 않았고 사실 충분히 많아서 잠시 동면케 했다. 준비된 사역자들과 재정을 하나님께서 가져오실 때 봄바람에서 프로그람들이 깨어나도록 하려고 기도하고 보살피며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이 생존 유지의 일중에 70% 정도는 밥하고 설거지 하고 청소 하고 시장보고 닭에 음식 주고 채소 씨앗 뿌리고 풀 뽑고 시장 보고, 아이들 먹이고 놀고 가르치고 뒤처리 하는 일들이었다. 학교 강의나 설교 준비, 심방은 틈새로 하는 것이다. 내 공부는 번갯불을 치듯이 한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빨리 읽고 빨리 생각하고 광범위한 자료를 정확하고 창조적으로 정리 할 두뇌를 성령님께서 주시기 시작하셔서 내 자신 종종 놀라곤 했다. 이건 확실히 내가 아니다 성령님이시다 자답 하면서. 사랑의 친구 전도자의 전략은 먹는 것이 많아서 채소와 닭을 키워서 달걀을 낳도록 해야만 한다. 그런데 은혜인지 문제인지는 몰라도 계속 이런 일을 규칙적으로 하다 보니까 재미가 있기 시작 하는 것이다. 하지만 뼈가 부숴 질 것 같다, 심장이 멈출 것 같다는 말들도 체감이 되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동역자님들은 이 상황을 보면서 기도 하고 기다리시다가 안타까운 나머지 러시아인, 조선족 근로자들을 소개 하곤 하셨다.

부활절 달걀을 사다놓고 토요일 제자 양육을 오후 좀 늦게 까지 하고는, “아버지 하나님 이 많은 부활절 준비를 제가 혼자 또 할 수 있을까요?” 하며 나오니 부엌 아름다운 방이 좀 떠들썩했다.

유년주일 학교 어린이들이 부엌문을 활짝 열고“우리가 했어요.”자랑스럽게 보고했다. 보니 색 달걀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2005 새싹 모임의 이정은, 안미숙 집사님들이 어린이들과 같이 색 달걀을 이미 다 만들었고 아름다운 부활절 꽃꽂이와 청소를 끝내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저녁에는 13년 동안 우리와 함께 살다가 떠난 85세의 최 사모님이 꼭 3년 만에 떠나셨던 달에 돌아오셨다. 기억력이 많이 감퇴된 상태지만 많이 반가왔다.

얼마 후 제자 양육을 하고, 우리의 기도 팀이었으나 한 3년 동안 연락이 두절된 여성 김 강도사님이 많은 어려움을 이기고 다시, 자주 오시게 되었다. 주지승 역임 부부 중 그 아내 채 성도님은 명석하고 유쾌한 성품이지만 치아가 제대로 없다보니 말을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알아듣게 해주려다 보니 말을 많이 하게 되는데 어쨌든 채성도님과 금방 잊어버리는 최 사모님과 머리 다친, 잘 잊고 착한 형제 등 사랑의 집 가족들이 벌리는 희극이 재현되기 시작했다. 그 ‘90년대의 생명이 왕성했던 시절의 희극과 다른 점은 나이들이 더 먹은 것이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들과 같으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박동렬 성도님은 초기 모범 유년주일 학교 지원이 3남매의 할아버지시다.

할머니는 우리를 가장 아껴 주신 분 중에 한분으로 쌀이랑 무엇이든지 갖다 주시곤 하시던 분이다. 지난해에 할아버지가 두 다리에 화상을 입어서 안양에서 1년이 넘도록 입원을 해 계시다가 퇴원 하셨다. 겨울엔가 완치 되지 않은 작은 상처를 좀 치료하러 다니다가 물품을 사서 소독법과 치료법을 할머니께 가르쳐 드렸다. 할머니는 원체 정확한 분이시라 가끔 물어보면 잘 하신다고 해서 안심했다. 몇 달 후 회관에서 만났을 때에 할머니답지 않게 원체 얼굴이 안 좋아서, 집엘 갔더니 할아버지의 화상 상처는 치료도 하지 않고 낫지도 않아서 읍내 병원에 한참 입원을 하고 오셔서 또 100만원을 지출 했다고 하셨다. 결혼 때부터 손자를 위해 장만한 논도 팔았다는 것이었다. 이때는 작심을 하고 완치 될 때까지 내가 치료하기로 하여 거의 매일 저녁에 집엘 갔다. 때로 1시간 씩 걸려서 치료 하면서 예수님의 영접을 재 확신케 해드리고 제자 양육도 하면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 . . 좋으신 하나님 . . .” 손 율동을 하고 박수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기도하곤 했다. 그리고 두 다리는 깨끗이 나았다. 할머니는 교회에 가서 살지, 교회 풀도 깍고 하셨으나 걷기 재활 훈련이 있어야 함으로 실현이 되지 않았다. 며칠 후 우리 교회 집사님이 지원이 할아버지 돌아가셨어요. 장래식도 끝났어요 라고 알려주셨다. 그렇게 건강하시던 분이 갑자기 심장마비가 와서 천국으로 고생 없이 바로 가셨다는 것이다. 다리가 낫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섭리 셨구나 . . .

얼마나도 완벽한 그의 자녀를 위한 계획이신가. 아쉬웠으나 슬프지 않았다. 세어 보았다. 확실히 우리 교회를 통해 천국으로 안내 받아 가신 분들을.

55명이었다. 그들은 지금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서 즐거워 하시겠구나.

아침에 테마 공원에 죠깅을 갔다가 우리나라 최초의 유일한 종 박물관, 현대식 새 건물 앞에 새끼줄들을 묶어놓은 것을 발견했다. 사실 이 종 박물관은 범종 전시관으로서 불교 종 박물관이다. 그런데 이것이 부족하여 일본 신사의 귀신에게 소원 비는 흰종이들을 묶는 새끼줄까지 등장시켜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식으로 5방색으로 한 것이란다. 국비, 지방비 54억원을 들여서 대리석과 고급 유리 자제로 불교 종 박물관을 만들더니 결국은 일본 귀신이냐? 올 정월 대 보름날에는 청와대에서 굿을 한다고 하더니 이제 대한민국의 공공 기관은 공식적인 귀신 숭배의 전당인가? 총신대학교 선교 대학원생들이 방문 했을 때 인솔해 가서 우리나라의 문화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실황을 보여주었다. 주인도 없는 나라처럼 대한민국은 무속, 귀신의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것을 알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어떤 대응을 하고 있는가? 이대로 두면 다음은 무엇인가?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 144:15. 이 말씀의 반대 말은 무엇인가?

3일 간 아침에 그 박물관 새끼줄 앞에 가서 특별 기도를 하고 담당자를 찾아갔더니 예측 했던 대로 일본에서 공부하고 온 여성으로서 이것은 한국 민족 문화라고 고집을 부리면서 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뿐만아니라 경기도 박물관을 위시해서 다른 박물관들도 일본식 새끼줄 매기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세금 내어서 귀신 섬기라고 불교 종 박물관을 공공 기관으로 만들고 귀신 수입, 확산 하는 사람들에게 월급 주어서 지원하는 형국이 아닌가!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성경읽기 캠페인을 벌리고 미신 타파 운동을 거국적으로 벌려 청결 작업을 해야 만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복을 받을 수 있다.

미신과 민족 문화의 차이를 설명하려니 이 젊은 지성인은 그들 그룹의 특성인 주체사상, 운동권 사상, 비합리성, 억지, 무속 신봉으로 대화를 거절했다. 제도적인 정리가 있어야 한다. 이 또한 인생의 열정을 쏟고 섬길 대상을 찾지 못한 이유 즉 주 예수님을 모르는 것이 그 근본 원인 일 것이다.

10년 전에 이사 온 여인인데 그 눈과 얼굴 모습이 정신적인 허약함이 있음을 곧 알게 했다. 의료의 도움을 받으나 효과가 없는지 별 변화가 없었다. 고백하기를 어떤 죄를 지었는데 그 죄 때문에 벌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 동안 많이 심방했고 드디어 예수님을 영접 했다. 조 권사님, 이 집사님과도 심방을 가서 예배를 드리곤 했다. 이 분의 말에 의하면 그 전에 교회에서 서리 집사까지 땄다고 하며 십일조 랑 감사 헌금도 가끔 하셨다. 그런데 며느리가 작은 교회에 나가지 말고 큰 교회에 나가라고 해서 지난 성탄 때부터 읍내 큰 교회에 다니는데 들뜰 정도로 만족해 보였다. 당연히 우리를 통해서 예수님을 영접 하셨고, 집 가까운 마을 교회 인 우리 교회에 와야 하지만 교회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끝났다.

한 달 전 즈음부터 우리 사랑의 마을 교회에 하루에도 수없이 와서 흐느끼면서 기도를 하곤 하셨다. 특별 기도 제목이 있느냐고 물어 봤더니 있다고 하셨다. 그것은 그 때 죄를 짓고 난 후 하도 마귀가 괴롭혀서 마귀를 자근자근 씹어 먹었더니 오른쪽 마음에 붙어있어서 토하도록 기도 한다고 하셨다.

나 보고도 토하도록 기도 부탁을 하셨다. 자신의 교회 목사님께도 토하도록 기도 부탁을 했는데 해주겠다고 했다면서.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는 마귀가 괴롭힐 수 는 있으나 마음에는 없다고 말해 주고 요한 1서를 읽히고 구절을 찾아주곤 하기를 두어 주간 한 것 같다. 그렇지만 결국은 원점이다.

“마귀를 자근자근 씹어 먹었으니 토하기만 하면 되요. 하나님께 기도

해 주세요”다. 나를 혼돈 시키는 것이 왼쪽 마음에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마음 전체가 편하다는 것이다. 마음이 불안하거나 두려워 하면 원수 마귀라 볼 수 있는데 이 증상은 정신적인 문제인가 영적인가 감별 진단이 안 되었다. 그런데 나는 전날 밤에 마을 지도자의 좀 비합리적인 일로 마음이 쓰여서 주님께 묻고 기도하려고 새벽에 교회에 앉았더니 또다시 내 옆에 앉아서 자근자근이 시작 되었다. 늘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두고 충분한 시간을 쓰지 못했는데 어제 밤의 일로 한 사람의 귀중함은 언제나 현실이니까, 계획한 내 기도는 제쳐 두고 본격적인 씨름이 시작 되었다.

도대체 이놈은 무엇인데 이 불쌍한 여인을 이렇게 괴롭히는가?

주 성령님 제게 좀 가르쳐 주십시오 기도 했다. 요일 1:9에 오니 기가 조금 죽는 것 같았다. 고후 5:17을 가져왔다.

“그런즉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지나 갔어요. 지나 갔어요. 지금은 하나님의 딸이쟎아요. 보라 새 것이 되었쟎아요. 새 것이 왜 자꾸만 옛날 것이 되려고 해요. 옛날 것은 없어져 버렸는데.” “ 토하도록 기도 만 해 주세요. 우리 교회 목사님도 그렇게 기도 해 주기로 했어요.”“ 그 목사님은 그 목사님대로 하실 것이고 나는 나대로 해요. 귀신이 마음에 없는데, 예수님이 계시는데 귀신이 있다고 하면 나는 거짓말 하는 사람이지요? 내가 거짓말 합디까?

모든 거짓말은 다 마귀가 가져오는데. 오른 쪽 가슴에 귀신은 없어요.

예수님을 영접하던 순간에 어두움이, 빛이신 예수님이 들어오시니까 사라졌죠. 아침에 해가 뜨는데 밤이 숨어 있을 수 있어요?”그는 혼신을 기우려 듣는 듯 했다. 나의 전투성 음성이 멈추었다.

조용해 졌다. 아, 그 얼굴에 한점 확신이 퍼지는 것이 아닌가! 그 어두움의 속임수 의 힘이 이 성도에게서 완전히 힘을 잃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일이 완성 된 것을 감지했다. 이 성도에게는 아무 말도 않았다.

“성령님, 당신의 말씀이 이렇게 힘이 있군요. 고맙습니다.”

“그 성경 말씀 좀 쓰 주세요. 써야지 알겠어요.”

그 말씀을 읽고 또 읽고 보배처럼 주머니에 넣어서 가만히 그러나 힘이

수혈되는 듯이 자리를 떠났다.

다음날 절에서 나온 할머니의 문병을 갔는데 고후 5:17을 확신을 가지고 거듭 설명을 하더니 그 구절을 쓴 귀한 종이를 선물로 주었다. 오래전 뉴욕에서 한 가족 7명 전부가 마귀에게 사로잡혀 속수무책이었던 경우에도

요 10:10 한 구절에 그 집 가장이 두려워하며 마귀가 완전히 쫓겨나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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