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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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월은 특히 더웠다.
그렇지만 우리 예수제자 연구원에서 공부하신 목사님 부부와
새로 부임하신 교회도 보고 싶어서 대천 해수욕장까지 가기로 했다.
아주 총명하고 사랑스러운 8살 남자 아이도 데리고 갔다.
내 운전대 옆에서 줄곧 지도를 읽어주고 말동무를 해주며 나를 기쁘게
해주었다. 절대로 순종하며 도움이 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유년 주일 학교에서는 사촌 동생들에게 너무나 잘 하기 때문에 내 마음
을 약간 찡하게 한 적이 있는 아이다. 어머니가 없기 때문이다.
내 착한 동생들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른의 사랑을 “벌려고”하는 것은 아닌가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아이는 장난을 치며 응석을 부릴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 전에 무엇이 먹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달걀 후라이요."
그리고 달걀 후라이을 5개 먹었다.
우리는 대천에서 돌아오는 길에 소천 하신 나의 아버님께서
50년 전부터 자주 말씀하시던 부여낙화암과 고란사에 들렸다.
낙화암에는 이광수 선생의 애절한 시 한편이 돌에 새겨 있었다.
고란사에서 올라오는 길에 드디어 기도하고 용기를 내었다.
이 지극히 사랑스런 아이의 가슴에 어머니가 없는 슬픔과 아픔과
수치와 혼돈을 깊이 숨겨놓았다면 끌어내고 밝고 강한 아이가 되도록
꼭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지혜롭고 착한 아이는 이런 것들을 끌어내어 처리 하도록 조금만
도와주어도 스스로 치유 할 능력이 있을 것이라 믿어졌기 때문이다.
고란사에서 올라오는 길에 백마강을 뒤로 하고 우리는 벤치에 앉았다.
“ . . .사랑하는 아이야.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니?”
“ . . . 네 . . ."
“ 아빠한테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니?”
“ . . 네 . . ”
눈 주위와 코가 불어지더니 눈물이 고이고 . . .
조금 후에 흐느끼기 시작 했다.
그러나 나는 이 대단한 가능성을 가진 아이가 할 수 있는 한 빨리
슬픔의 뿌리를 빚 속으로 들어내어 뽑고 오히려 많은 자원을
가진 건강한 아이로 자라도록 돕기 심히 원했다.
“ . . 아빠가 뭐라고 하시든?”
“. . .때렸어요.”
“ 어떻게 ?”
“ 파리채로요. . .”
“ 어디를? ”
“ 아무데나 다요. . . ”
“ . . 그리고 다시는 어머니에 대해서는 아버지께 이야기 하지 않았니?”
“. . 네 .”
이 때쯤은 내 자신이 놀라기 시작 했다.
이 사랑스런 아이가 너무나 처절히 흐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어린 아이에게 이토록 큰 슬픔이 있을 수 있다니 . . .
눈물은 두 뺨으로 흐르고,
소리는 커지면서 앓듯이 통곡이 되고 있었다.
자신은 이 엄청난 슬픔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왜 이런지도 모르는
혼돈에서. 이렇게 쉽게 그의 깊은 아픔과 슬픔을 틀어놓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이 아름다운 아이가 치유되고 건강하고 티 없는 아이로 자라기를
기도하면서 물었다. 언제 특별히 슬프냐고.
다른 아이들이 엄마라고 부를 때라고 했다.
자주 그런지 가끔 그런지 물으니 가끔 그렇다고 했다. 희망이 더 있다.
요셉도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성경이야기를
많이 해주셨기 때문에 이집트의 총리가 된 것에서부터 시작 했다.
사무엘도 매우 어릴 때 부모를 떠나서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았던 일,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도 일찍 어머니를 잃고
성경을 읽으며 자랐던 일,
예수님은 아버지를 일찍 잃은 사실 을 이야기 했다.
예수님과 성경이 그들을 위대한 사람으로 키우셨듯이
너도 그렇게 키우실 거란다.
이 착한 아이는 이 모든 것을 알아듣고 기대했던 대로 희망을
가지기 시작 했다. 새 힘을 얻는 듯 했다.
“너무 슬퍼서 걸어가지 못하겠니?”
“ 네”
그래서 다시 내려 올 때처럼 업고 백마강을 뒤로 하고 고란사 언덕길
600미터를 올라왔다.
식당에서는 어른 분 불고기를 혼자 다 먹고,
상 밑으로는 내게 발장난을 걸고, 돌아오는 길 놀이터에서는 행복하게
놀더니 차에서 잘 잤다.
그 다음날 교회에 와서는 칠판에 길게 두 줄을 그었다.
한쪽에는 기쁜 일, 다른 쪽에는 슬픈 일이라 쓰고 10번 까지 메겼다.
기쁜 일
1. 은 교회에서 선생님하고 맛있는 것을 먹은 것
2. 는 교회에서 달걀 후라이를 먹은 것,
3. 은 교회에서 선생님하고 논 것 이었다.
그러더니 조금 후에 “슬픈 일은 없으면 좋겠어요.”
없으면 에 강조한 그 말은 슬픔에 한번 동상이 들었던 경험을
가진 아이의 절실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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