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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집

사랑의 집 (49)

1,766 2013.01.27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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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집(48) 12.2.1-1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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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사랑의 집은 특별했다.
 

그 특이한 섬김과 전쟁과 위기와 갈등과 승리와 결실이 1차 총 정리되는 24년의 마지막 해 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과정에 하나님의 많은 약속들이
실현되어 갔다. 그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가 구심선교다.
 

사랑의옹달샘, 구심선교 매뉴얼을 3월 중순에는 완성해야했다.
왜냐면 올해는 지구인이 가장 많이 모이는 세계 3대 대회 중에 2개 대회인
세계엑스포와 올림픽이 개최되는 해이다. 엑스포는 마침 우리나라 여수에서
개최되고 올림픽은 세계의 다운타운 런던에서 개최되니 대규모의 구심선교를
하는 것은 타당하다. 어떻게 할 수 있는지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쨌든 구심선교 매뉴얼과 지난해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위시한
구심선교 다큐멘타리는 있어야만 기본자료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매뉴얼을 예수제자들 소식지 47번째와 통합하여 특집호로 출간하면 두 권의
책 대신 한권으로 압축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구심선교 매뉴얼은 책으로
출간하려는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사진이나 내용이 준비 되지 않은 상태였다.
비전문인인 우리들이 비용을 절약 한다고 직접 책을 만들다 보니 시간과 힘의
소모가 컸다. 올해 이곳 시골 1,2월은 눈이 무척 많이 오고 특히 추운데다 컨테이너 2층 사무실은 단열이 별로라 연료 소모도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책의 구성이 1차로 된 후 아름다운 겨울의 자연과 강인함 속에 문자 그대로 불철주야 원고들이 정리 되어갔다. 3월이 되자 사진과 디자인, 최종 마지막 편집은 결국 우리들이 해 낼 수가 없어서 촉박한 시간에 전문가에게 맡기려니 적임자를 찾기도 쉽지 않고 비용 요구도 많았다.
위기에 익숙한 우리들,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라 기도 했다.
우연히 수 년 전 초기 예수제자들의 간증집 ‘그의손길 그의숨결’을 편집한 분이 등장하여 깨끗이 시간 맞추어 해 내셨다. 그렇게‘사랑의 옹달샘’이 출간되었다.
 

자, 이제 구심선교를 위한 실증 기본자료는 준비 되었으니 사랑의친구들을
양육하는 일이다. 이 친구들이 여수 엑스포에 오시는 800만 명중에 할 수 있는 한 많은 분들께 사랑의이야기(Love Story: ls)와 기쁨의성장(Joyful Growth: jg),
오늘의크리스마스(tc) 꼬마책을 잔뜩 선물하고, 다른 선물들도 푸짐하게 드리며,
사랑의친구집이 되어 가정에 초청하고 교제하고 필요를 공급하며 귀국 후에도
계속 친구로서 지구의 친구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양육하는 일이다.
 

이 두 큰 대회에 jdi도 구심선교로 섬기기에는 절대 역부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의 방법으로 우리들도 불러 주셔서 그
신실하심과 영광을 보게 되었다. 그때 이야기는 이 소식지 구심선교 부분에 실었다.
 

착한 요한 형제는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에서 심히 놀란 후
외상 후 스트레스로 오래 고생하며 온 가정이 복음화 되는 합력하여 선을 이뤄
가고 계셨다. 긴 복음 송들 가사도 거뜬히 얼마나 많이 잘 외우는지 놀랍다.
오늘의크리스마스(tc) 꼬마책 활용은 완성 수준이다. 하루 7번 찬양, 매일 외울
말씀, 매달 외울 말씀을 충실히 기쁨으로 한다. 매일 외울 말씀을 토의 하며
말씀이 정립됨에 따라 튼튼해지고 안정 되는 것을 보면서
“그가 말씀을 보내어 고치시고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시편 말씀도 더 확인 되곤 했다. 이 청년이 이렇게 잘 하고 유익을 입는다면 누구든지 할 수 있고 유익을
입을 수 있다는 희망도 생겼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아버지의 과격한 성격으로 입은 손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자매님은 착하고 명석하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며 희망이 있으며 자신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할 수 있다는 성경의 지식 결여로 약한 사람이 되었다. 일반 심리치료를 오래받다보니 정보들이 혼합되어 때로 더 혼란스러워 한다.
 

때마다 그 부정적인 감정들에 성경말씀이 진단을 하고 약을 줄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혜택을 입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그토록 기뻐하고 양육되기 위해 기본적인 영양, 말씀들을 들이 마시듯이 흡수해 냈다.
그러나 다양하게 상한자들이 사랑의 집을 오가면서 이 자매님은 보호자가 있어야 했다. 좋은 어머니는 고통 하는 딸을 위해 최선을 다 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이 곳은 가족들의 방해가 없는 나만의 공간입니다.” 라고 주장하니 어머니나 가족이 도우러 오실 수가 없고 이곳 자원만으로는 역부족의 상태이다.
 

진 자매님도 마찬가지이다. 요즈음은 거의 날마다 눈 길 속에 홀로 와서 냉방 교회에서 기도하고 가는데 그 모습이 이렇게 더 가면 생명에 지장이 올 정도로 건강이 약화 되어있다. 정신허약 남편의 포악, 폭행, 감금이 원인들이다.
그 동안 사회복지사가 지원해 주어서 조금은 안심하고 있었으나 사회복지사도
요즈음은 지쳤는지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지역사회에 이렇게 방치된
상한자들, 힘 잃은 가정들, 정부의 비싼 산발적인 지원으로서는 근본적이고 효율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 정신, 신체, 가정 그리고 영적인 즉 전인적인 건강복지 구조가 만들어 져야한다.
이것이 마을건강복지인데 전인적인 보살핌으로 상한자들과 환자들을 줄이고 가정과
마을 공동체가 힘을 모아서 서로 돕도록 인력을 양육하고 지원하는 구조이다.
 

 

중국에서 60대 후반 오사라 선교사님과 서울에서 수림자매님이 3월 초에 방문하셨다. 꽂샘 추위와 바람이 대단하던 밤 사라 선교사님은 냉방 교회에서 주님과 같이 밤을 새우시겠다고 우기셨다. 중국 시골에서 추위를 견딘 이야기와 중국 마을주민들의 격려도 들려 주셨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런 댓가를 치르고 생명의
주님이 알려지는데 거의 탄식하며 하나님께서 선교사님과 자자손손 복을 주시기를 기도했다.
수림 자매님은 이때 삶의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면서 큰 가방을 가지고 사랑의 집을 방문하던 중이었다. 헌책들을 팔아 모은 헌금과 정성을 다한 재활용으로 만든 잡기장, 장기 노동을 위한 고무장갑 등등을 가지고 기대 차게 왔다. 우리의 출판물들을
속독하더니 맞춤법, 띄어쓰기, 오자들을 금방 찾아냈다. 특별한 재능의 소유자였다.
그 동안 살아온 힘든 이야기도 나누며 적어도 중기 체류를 노력 했으나 4일쯤 되든 날인가 바람과 추위, 불편한 이곳 환경을 견딜 수 없는지 그 큰 가방을 또 가지고 떠났다.
 

여름에 여수 엑스포를 다녀오니 레조 앞 유리가 깨어져 금이 가 있었다.
지난번 여수 엑스포에서 밤 1시에 들어 올 때도 옆집 아저씨가 밤새껏 고추밭에
물을 준다고 경운기를 길에 세워놓아서 결국 길게 끍히고 말았다. 4년 전에는 레조차가 접촉 사고가 나고 가해자가 몸체를 새로 해 주어서 새 차 같이 되었는데
이 아저씨가 며칠 뒤 트렉타로 오른쪽 앞부터 끝까지 긁어 놓았다.
이제 유리까지 이렇게 됐으니 만신창이 차에 가깝다. 그러나 금간 유리가
완전히 나갈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그때까지 타기로 했다.
어떤 날 잘 사용하지 않는 통장에 보낸이는 채선생님, 차 앞 유리, 새걸로 수림올림으로 하여 각 10만원씩 3분이 입금을 하셨다. 내가 내게 보낸 적이 없는데.....?
차앞유리씨가 입금했다? 이 알 수 없는 분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신기해하며 감사하고 더 시급한 차 보험료를 지불했다. 시간이 부족하니 더
확인도 못하고 마음에 이 3분은 누구신가 고마워했다. 어떤 날 모처럼 통장을
자세히 보다가 3분의 이름을 한꺼번에 읽으니 뜻이 통했다.
“채선생님 차앞유리를 새걸로 바꾸세요수림올림”이다. 이 재능 있는 자매님이 어디에 어떻게 정착을 했을까 종종 궁금했는데 6개월 만에 이런 식으로 소식을 알려
오다니, 깨닫는데 2개월이 걸린 후....., 자매님은 전화가 없으니 감사를 알릴 길도 없어서 하나님께서 그 재능과 착한 마음을 남김없이 쓰시기를 소원했다.
 

우리교회는 지난 10년 동안 어린이들, 청소년들이 갈갈이 찢겨지고 결국은 일어
설 수가 없게 되면서 인제가 입은 타격은 엄청나다. 유년주일학교에서 그토록 좋아하던 교회 형들 누나들을 잃으면서 마지막에는 내가 유일한 친구, 선생이 되었다.
제자양육은 거의 매주 한 번씩 아침에 학교에 데려다 주면서 오늘의 크리스마스
에서 그날 말씀을 외우고 잠시 토의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늘 하던 말
“인제야, 아침이슬은 별 것이 아니쟎아? 그러나 이슬이 안 오면 땅은 사막이 되지.
지금 이 성경 말씀이 별 것이 아닌 것 같지만 네 영혼에 아침이슬과 같단다.
이렇게라도 말씀이 없으면 네 영혼이 사막이 될 수도 있거든.” 때로 아침에 늦잠
자고 서둘며 읽기 싫어도 차안에서 항상 순종해 왔다. 이제 새해에 고등학생이
되면서 컴퓨터를 잘하시는 정 전도사님과 함께 지나치게 친해진 컴퓨터 게임 대신
유익한 일들, 마지막 청소년 시기의 싱싱한 새장이 열리기를 간구한다.
 

여름 동안 여수에 오가느라 옆집 97세 할머니가 산책을 안 나오시는 것을 주의
깊게 보지 않다가 아차 싶었다. 얼른 집으로 가보니 기일이 짧음을 알 수 있었다.
효부 며느리는 시어머님이 나를 보고 얼마나 좋아하고 계시는지 통역을 해주셨다.
22년 전 윗마을 전설의 고향집이라 불리던 사랑의집에서 지금의 교회로 이사 왔을 때다. 몇 년 전 천국에 가신 친구 이웃 할머니와 함께, 이 마을의 첫 번째 사랑의친구가 되신 이모님께 두 분이 찾아 오셨다. 어떻게 잘 죽을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 왔다고 하셨다. 이모님은 시어머님을 모시고 사셨는데 건강하신 80대 중반 시어머님의 이야기를 해 드렸다. 목사님이 심방을 오셨을 때, 시어머님은 “목사님, 이번 주일 교회 못 갑니다. 천국에 갑니다.” 하시고 모아둔 헌금을 드리고 금요일인가 아침에 눈을 떠니 천국으로 옮겨가 계셨다. 이모님의 이야기를 다 들으신 후 이 두 분 할머니들은 이모님을 따라 예수님 영접기도를 드렸다.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 재확인이 꼭 필요했다. 사랑의이야기(ls)를 다시하고, 영접기도를 다시 한번 더 따라 하시도록 했다.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셔서 내가 석연치 않아 하니 주욱 모셔온 효부는 절대로 따라 하셨다고 확신했다. 사랑의이야기와 기쁨의성장(lj)을 효부에게 주고 어떻게
양육 할 것인지 알려드리고 여수로 갔다. 여수에서 돌아 왔을 때는 완전 무의식
이셨고 평화롭게 천국으로 옮기셨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맏아들도 어머니는 좋은데 갔습니다 하고 확인을 하셨다.
가을에 두 번째로 뉴욕 한 교도소에서 십일조 $5 수표와 함께 오늘의 크리스마스(tc) 꼬마책 요청이 왔다. 첫 편지에는 이 꼬마책을 교도소에서 친구가 받고 예수님을 믿고 자신에게 전해준 이야기, 감사의 편지와 함께 생일 선물 중에 십일조를
보내왔다. 바울 사도의 말씀, 자신은 감옥에 갇혀 있지만 복음은 매이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구심선교의 중요성도 재확인 했다.
 

지난 23년간 국유림으로 임대해 쓰던 부지는 사랑의집, 사랑의마을교회, 국제예수제자들의 본부이다. 초기 임대료는 만사천원쯤 됐는데 올해는 백삼십만원이 넘었다.
지난 사년 동안 스무번도 더 군청, 도청엘 다니며 간청하고 서류를 넣어 왔는데도,
불하도 되지 않고 임대료는 상승하니 허술한 건물들 이지만 포기하고 이사를
가야 하는가 생각했다. 가을에 난데없이 불하 허락이 와서 놀랐다.
매입비용이 6,500만원 인데 이곳 지가의 삼분의 이 정도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일이니 이제 그 비용도 하나님께서 십이월 말 마지막 계약일 이전에 그의
방법으로 또 하셔야 할 상황이다. jdi의 재정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놀람과 감격의 연속이었다. 그 재정을 공급하신 동역자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더욱 그렇다.
 

지난 10년 동안 사역자는 한명도 없고 상한자들로 사랑의집이 구성되면서
동역자님들께 이곳 연락조차 드릴 시간도, 힘도 없게 되었다. 저희들을
사랑하시던 후원 동역자님들도 궁금하시다가 결국은 후원을 중단하기 시작하셨다. 몇 년 전에 유지 불능이 되어야 했지만 그러한 상황에 재정까지 더 악화 되면
마비에 들어가는 것을 아시는 긍휼의 하나님께서 끝까지 신뢰하시는 정기 후원자님들을 통해서 몇 년을 더 연장 시켜 주셨다.
오랜 정기 후원동역자님께 한없는 감사와 하나님의 갚으심을 기도합니다.
 

그러나 올해는 마땅히 올 일이 왔다. 드디어 전기 요금을 몇 개월 낼 수 없게
되면서 한전에서 단전 연락이 여러 차례 오는데, 눈 많이 오는 추운 중부 지방에
전기까지 없으면 않되는데...... 생각 뿐이었다.
오직 이것이 몇 년 전에 오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와 구심선교 매뉴얼
“사랑의 옹달샘” 책을 시간 맞추어 출간 하느라 재정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아침에 전화가 왔다.
“나는 어머니 친구인데 이제 91살이요. 내가 또 하지는 못하겠고 이번이
마지막으로 좀 후원 할려니 연락처를 몰라서 물어서 알았어요.”
50년 전에 소천하신 어머님의 친구......, 그리고 100만원을 입금해 주셨다.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어머니의 좋은 친구 권사님, 좋은 어머니에 대한 감사로 마음이 찡 한 채로 전기 요금의 일부를 지불 하니 홀가분했다.
여수 엑스포 때도 전도지만 600만원이 지출 되는데 늘 그렇듯이 일이 중요하고
급할 때는 재정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이 상황을 모르시는 마 집사님 부부께서
7월 초와 말에 각각 100만원씩 입금을 해 주셨다. 왜 그렇게 하셨는지 하나님과
집사님부부만 아실 것이다. 여수 엑스포에 구심선교가 시작될 때도 내가 그전에는 몰랐던 여수 충무동 교회에서 기꺼이 베이스가 되고 110만원을 후원하셨다.
가까이에 있는 여수 중앙 교회에서도 재정적으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주셨다.
여수 엑스포로 jdi의 적자가 더 심화 되었을 때 전혀 생각지 않았던 런던올림픽
선교대회에서 생명실탄 전도지 비용으로 360만원을 보내 주셨다.
전혀 기대치 않았던 이 거액으로 누적된 급한 빚의 일부를 갚고 중국어 인쇄비 일부로 예치했으나 결국은 못하고 지금 쓰는 전도지들을 인쇄하게 되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신대로 하나님의 그 신실하심을 보았다.
마을에 연세 높은 분들은 많고 주민들의 마음은 익어 가는데 심방할 시간이 없으니 조바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길에서 연세 높은 분들을 만나면 바로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돕는 수 밖에 없다. 최우선 순위가 고향으로 떠날 분들의 마지막 길
안내다. 정진님 82세 성도님도 그렇게 하여 길에서 공주님으로 출생하셨다.
10년 전 교회가 그나마 안정되어 있고 이규환 집사님의 건강이 그만하실 때
우리가 함께 심방 다니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이 10년 동안에 집사님도 생명의
소생과 연장을 얻게 되셨고 교회와 jdi는 사경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은혜로
구원을 얻었다. 이제 심방 다닐 과자도 준비해 놓았는데 김언규 집사님 부부께서 연필이랑 볼펜도 잔뜩 실어 오셨다.
 

대구 고 사모님과 부산 병원선교회 전 전도사님, 미국 아틀란타 박 전도사님과
소방 방재청 정 집사님이 안산 외국인들과 호주 신우회 대회를 위해서
꾸준히 생명실탄 전도지(lj)와 오늘의 크리스마스(tc)를 자비량으로 공급하시는
것을 보면서 한없는 감회를 가지게 된다. 오래 전 이곳에서 제자양육을 받으신
분이 선교사로 파송 받고 떠나면서 lj 와 tc를 가지러 오셨다.
성령님께서 이 소용돌이치는 지구에 변함없이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통해
당신의 생명과 사랑을 뿌리고 거두시는 현장을 보며 희망과 기쁨이 또다시
피어나곤 한다.
‘91년도에 예수제자연구원 6개월 과정 1기 졸업생 부부 목사님과 사모님이 새해 초에 오셨다. 수시로 여름성경학교와 작은 교회 연합수련회 등을 도와 주셨는데 한동안 연락이 없어서 보고 싶고 궁금했든 차 매우 반가왔다. 그 동안 중국 선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하나님께서 귀히 많이 쓰고 계신다.
10월에는 이 신학교에 가서 신학생들도 보고 강의도 하고 신학생들이 섬기는
교회들을 방문하면서 나 자신 많이 배우고 여러 가지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오래 동안 중국 대국이라고 마치 종주국처럼 섬겨오던 사람들을
앞에 앉히고 강의도 통역도 경영도 재정도 한국사람들이 하고 있으니 어찌된
일인가? 예수님을 버린 민족이 졸지에 이렇게 되는군 을 생각하니 불상하고
대한민국 남한이 하나님으로부터 입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 새삼스러 웠다.
이 모든 것들은 나를 무한히 겸손하게 하셨다.
중국 경제의 급성장이 중국 정부의 유능성 때문이 아니고, 이 하나님의 사람들
때문이라는 생각에 미쳤다. 현재 세계에서 중국이 기독교인 수가 가장 많다.
1억 4천만, 미국 기독교인들 수 보다 더 많다. 2천년동안 가장 많은 선교사들이
파송 되었고 가장 효과가 없었던 나라가 중국이다. 지난 30년 동안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공산당들에게 살해 당하는 민족적 시련 후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이러한
기적을 일으키시는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인산인해 중공군들이 대한민국 남한을 무력으로 공산화하려고 했으나 하나님의 주권으로 실패 했는데 이제 인산인해 중국 하나님의 사람들을 온 세계에 보내시려는 것이 아닐까?
주 예수님의 사랑과 생명과 부를 가지고 섬기게 하시려고. 인산인해 사랑의친구들이 중동으로 아프리카로 갈 수 있는 나라는 중국뿐이다. “하나님 그렇게 하시옵소서. 이들에게 복을 주옵소서. 당분간 중국 성도들을 섬기는 한국교회는 이를 위해 겸손과 사랑으로 밑거름이 되고 예수님의 생명과 사랑의 씨를 뿌리게 하옵소서.
사랑의친구 인산인해의 꿈을 심게 하옵소서. 삶으로 심게 하소서. 결코 군림하는
범죄를 하지 않토록 도우소서”
중부 지방은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오고 춥다. 특히 사랑의집과 교회는 여름 집으로는 상당히 좋으나 겨울에는 실로 한파와의 씨름터이다. 지난해 대거 심야보일러
수리를 했는데 올해 또 가동이 되지 않아 그 기술자와 3주가 넘도록 여러차례 전화
연락을 했다. 결국은 연락조차 두절되고 눈보라와 한파는 닦아 왔다. 더 늦기 전에 시급히 다른 기술자의 도움을 청해야 했고 그 비용이 자그만치 26만원 이상이
나왔다. 무료로 할 수 있었던 것을.
두 기술자들 중에 한 기술자가 교회는 방학 중이라고 하셨다.
오늘부터 개학을 합시다 하고 사랑의이야기(ls)를 시작 했는데, 9번 예수님 영접
기도에 눈이 고정되고는 전심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셨다.
그 길고 슬프고 혼란하고 두려운 방황이 끝난 것이다. 돌아온 탕자처럼 환영을
받으며 아버지의 품안에 들어오셨다. 그 모습이 올 때의 거칠고 좌절한 탕자와는 딴사람으로 온유한 왕자처럼 떠나셨다. 이 날 저녁에 드디어 지난해 수리해준
그 기술자와 통화가 거의 한 주간 만에 복원 되었다. 안타깝지 않았다.
“알았습니다.” jdi의 재정 상황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나의 아들이다 라고 하심을.
26만원은 나의 아들을 찾기에 jdi가 당연히 지불할 비용이다. 어떤 방법으로 어떤 비용을 치르고라도 그의 자녀를 찾으시는 극진한 하나님의 사랑!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다니시는 예수님을 조금 더 이해 할 수 있었다.
눈보라 속에 찾겨진 그 양은 양 집사님이었다.
 

수 년전에 사랑의마을교회 여름성경학교를 해주신 백창희 전도사님이 정관석 전도사님과 결혼 하시고 3살짜리 다혜와 같이 jdi 사역자로 12월부터 영입이 되셨다.
그때는 유현주, 이희정 학생들이 중학생들이었는데 이제는 아름다운 사회인들이 되어 청주에서 근무 중이다. 옛 고마운 선생님이 오셨다는 소식에 반가움으로 바로 그 다음날 저녁에 피자랑 두유를 사들고 눈 내리는 밤에 교회에 왔다.
이 두 청년들이야 말로 마지막까지 사랑의마을교회에서 살고 그의 영혼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그리고 떠난 그들의 어머니 교회이다.
현주가 모태에서부터, 희정이가 6살 때부터인가 문자 그대로 안팎으로 회오리 바람치는 교회에서 동고동락을 하면서 자라고 키우던 과정이 바울 서신들을 떠 올렸다. 믿음의 아들, 딸들. 이들을 잠시 보는 즐거움은 컸다.
자신들의 성장에 대해, 주요 시점 마다 자신들이 기억하는 것 보다 내가 더 많이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바울 사도께서 그가 세운 어린교회들, 잘 자라는 교회들을 위해 불철주야 기도하고 애쓰시던 마음이 좀 이해가 되었다.
예수님께서 그의 교회를 향하신 사랑이 어떠한가! 그들을 위해서라면 생명을
내어 놓으셨던 삶! 그 사랑을 우리는 받고 산다. 헤세데.... 내리사랑을!
글쓴이: 채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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