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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학기 개학이지요^^

1,339 2010.09.0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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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31.jpg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오늘은 9월 1일, 이제 저희 여덟 살짜리 아들도
40여일간의 여름방학을 마치고 개학을 했습니다.
물론 애비를 닮아서, 개학 하루 전날인 어제까지도
방학 숙제를 <단 하나도> 하지 않고 있다가
부랴부랴 두 개 정도는 예의상(?) 벼락치기로 했습니다.
물어볼 필요도 없이, 방학 동안 일기는 하루도 안 썼습니다. ㅎㅎㅎㅎ
어떻게 단 하루도 일기를 안 쓸 수가 있냐?

숙제도 그렇고, 일기도 그렇고...
이건, 애를 탓할 게 아니라,
에미 애비를 초달해야 할 문제입니다.

********************

어젯밤, 아들의 방학숙제를 같이 도와주다가
책꽂이에서 무슨 그림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일일 생활계획표입니다.
보아하니, 방학 직전에 앞으로 방학기간 동안 매일 일과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계획해둔 일정표가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걸 살펴보다가 푸하하하핫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0100831-5.jpg

우리 자랑스런 아들,

일단 자정(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는 <공부>를 합니다.
정말 전교 1등을 목표로 하여, 밤을 새워 공부를 할 작정이었나 봅니다.
초등학교 1학년의 각오로서는 세계 챔피언감입니다.

새벽 네 시부터 아침 여섯 시까지 두 시간 동안은
<아침 밥을 먹는 시간>입니다.
밥알 열 개 입에 넣고 천 번 씹고 삼키기,
반찬 하나 입에 넣고 10분 묵상과 기도 후에 씹어 삼키기,
한 숟가락 뜰 때마다 일용할 양식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식탁 위에 올려진 이 양식이 있기까지 수고하고 애쓴 농부들에 대한
감사 10분씩 하기.... 뭐, 그러면 두 시간은 걸리게 됩니다.

거룩하고 경건한 아침 식사를 하고
아침 여섯 시부터 일곱 시까지 한 시간은 <책 읽기> 숙제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하루에 한 시간이면, 방학 동안 적어도 6-8권은 읽게 될 것입니다.

책 읽기가 끝나면 아침 일곱 시부터 열 시까지 세 시간 동안
<옷을 입>습니다.
그나저나, 어떻게 해야 세 시간 동안 옷을 입을 수가 있을까?
아마도 옷장과 서랍장에 있는 모든 속옷, 겉옷을 다 꺼내서
한번씩 입어보고, 벗어서 다시 잘 정돈해 두고,
상하의 이런 조합 저런 조합을 시험해 보노라면 세 시간은 족히 걸릴 것입니다.

아침 10시면 일단 <점심 식사>를 하게 됩니다.
곧 죽어도 밥은 먹어야 합니다.
새벽 네 시부터 아침 식사를 하였으니 오전 열 시면 배가 고플 법도 합니다.
물론 점심 식사시간도 두 시간이 소요됩니다.

낮 정오부터는 저녁 여섯 시까지 여섯 시간 동안
<일기>를 씁니다.
여섯 시간 동안 쓰는 일기라.... 우와!!!
정말 자기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은 물론이요,
할머니와 엄마 아빠의 행동거지 하나, 숨소리조차 기록을 할 작정인가 봅니다.
혹시라도 작은 실수나 잘못이 있었다면 그 하나에까지라도
깊은 회개와 반성, 그리고 새로운 결단까지 내리려면 여섯 시간은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여섯 시간 동안의 일기 쓰기라...
일기에 무슨 원한이 쌓인 게 틀림없어 보입니다.

자, 이제 저녁 여섯 시가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밤 열 시까지 네 시간 동안은, <저녁 식사> 시간입니다.
잘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 말도 있듯이,
잠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면 그야말로 하루의 저녁 식사는
일생의 마지막 식탁이 될 수도 있겠기에
최선을 다해 가장 풍성한 식탁으로 만찬을 즐겨야 합니다.
먹다 먹다 너무 배 부르면 좀 쉬었다가, 좀 누웠다가,
그래도 배가 안 꺼지면 배설을 통해 배를 좀 비우기도 해 가며
네 시간 동안 저녁을 먹기로 합니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드디어 하루 일과를 마치게 됩니다.
방학인 아닌 평소에도 밤 열 시는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
다만 방학 중에는, 주어진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기에
수면 시간을 <하루에 두 시간>으로 대폭 줄이기로 결심합니다.
지금 엎어져 밤새도록 잠을 잘 때가 아닙니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잠을 줄여야 합니다.
두 시간 동안의 깊고 짧은 수면시간을 가진 후,
자정이면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 새벽 네 시까지 공부를 합니다.

그런데 저희 슈퍼맨 아들은
이 계힉표와는 별도로, 그 밑에 또 다른 다짐을 합니다.
하루에 최소 두 시간 이상씩 공부를 하기로,
하루에 최소 3시간 이상씩 책을 읽기로,
게다가 하루에 한 시간 이상씩 운동도 하기로,
컴퓨터는 하루에 한 시간 이하로만 하기로....
위의 일정표에는 그럴 시간이 없는데,
도대체 언제 그런 시간을 내서 책을 읽고 운동을 한다는 건지...
아마도 아예 잠을 자지 않을 작정인가 봅니다.

********************

방학 마지막날, 아들의 방학 중 생활계획표를 발견하고서 살펴본 순간,
지난 40여일 간의 방학 기간 동안, 우리 아들이
이 계획표대로 살지 않은 것이 얼마나 고맙고 고마운지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습니다.
이 계획 대로 살았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애... 잡을 뻔했습니다.

장한 우리 아들, 어찌나 준비성도 철저한지,
방학 시작하기도 전에, 방학 기간 동안 계획대로
하루에 두 시간 이상 공부하고, 하루에 최소 세 시간 책을 읽고,
한 시간 이상 운동을 하고, 컴퓨터는 한 시간 이하로만 하기로
다짐한 그 약속을 과연 잘 지켰는지, 아니면 못 지켰는지를
미리 다 체크를 해두었습니다.
한두 달 앞 정도는 가볍게 내다보는 예지(豫知)의 은사도 받은 것 같습니다.
양심은 조금 있어서, 때론 다짐을 지키지 못했다고
삼각형 표시도 해두었습니다.

물론...
방학이 이제 끝났지만...
저희 아들, 하루 중 여섯 시간 동안 일기를 쓰겠다고
그렇게 굳게 다짐도 하고 약속도 했건만,
결과적으로 방학 기간 동안, 하루도 일기를 안 썼습니다.
하루에 두 시간만 자기로 했지만, 열 시간씩 잤습니다.
책.... 만화책 몇 권 빼고는, 한 권도 안 읽었습니다.
아이나 그 아이의 에미 애비나,
방학(放學)은 말 그대로 배움(學)을 놓는(放) 것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슈퍼 울트라맨 장한 우리 아들!!!!
화이팅!!!

다음부턴 이딴 계획, 세우지 마라!
[퍼온 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이 게시물은 JDI님에 의해 2010-09-29 14:26:05 친구들과 함께하는 희망을 주는 시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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