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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양육

아버지와 아들

1,128 2014.04.2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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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이야기: 아버지와 두 아들
 
 
옛날에 아주 좋은 아버지가 있었다. 그리고 아주 부자여서 많은 땅과 일꾼들이
있었다. 이웃들은 이 집안에 드나들기를 좋아하여서 늘 잔치 집 같았다.
 
이 좋은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맏아들은 모범생이어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다. 맡은 일은 어떻게 하든지 다 해 내었다.
그러나 일에 지친 탓인지 얼굴에는 표정이 적고 말도 별로 없었다.
둘째 아들은 활달하고 장난기 심한 망난이였다.
 
하루는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 와서 난데없이 자신에게 돌아올 유산을 지금 달라고 요청 했다. 독립을 하기에는 아직 준비 되지 않은 것을 아버지도 알았으나 그 성질을 아는 탓에 인생 공부를 하라는 뜻인지 재산을 내어 주었다.
둘째 아들은 그 엄청난 재산을 곧 정리 하여 큰 자본금을 가지고 사업을 한다고
해외로 떠났다. 큰 형은 동생의 당돌함과 아버지의 이해하기 힘든 결정에 정신이 아찔했다. 저렇게 자리가 빈 재산을 어떻게 만회 한단 말인가! 상실감은 더했다.
가족들과 일꾼들, 이웃들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둘째 아들은 신이 나서 할 수 있는 한 먼 외국으로 가서 아무 것도 구애 받지 않고 사업 대신에 방탕한 향락 생활을 시작했다.
건달이들과 방탕한 여자들과 기생들이 먹이를 따라 모여들었다.
둘째아들의 자본금은 생각 보다 일찍 바닥이 났고 설상가상으로 그 외국에는 큰
흉년이 들었다. 아무도 그에게 오지 않았고 외롭고 혼돈한 그는 외국에서 아사지경에 이르렀다. 모든 자존심과 꿈은 사라지고 찾은 곳은 돼지 사육장 이었다.
그 곳에서 품값으로 돼지 사료를 얻어먹으려고 했다. 그러나 양돈장 주인은 돼지를 먹일 사료도 부족 한데 너에게까지 줄 수는 없다고 거절 했다. 돼지 보다 무가치한 사람으로 전락했다.
 
이제사 비로소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얼마나 좋은 분이시며, 또 아버지의 집이 얼마나 좋으며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이 어떻게 안전했으며 그 아들의 특권이 그토록 엄청 났음을 절감했다. 제 정신이 돌아온 것이다. 정상이 된 것이다. “아, 아버지 집에는 풍족히 먹고 만족하게 일하는 일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이렇게 하다가는 굶어죽을 것이다. . . 아버지께 돌아가자. 내가 아버지와 하늘에 죄를 지었으니 이제부터는 아들이 아니고 일꾼의 하나로 보십시오 하자.”
 
그리고 서는 어지러운 머리를 들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일으켰다. 멀고 먼, 아버지가 계시는 고향집으로 넘어지며 쓰러지며 거지가 되어 돌아간다. 수 없이 자신에게 물었다. 아버지가 나를 못 본체 하시면 어떻게 할까? 일꾼들을 보내어 쫒아내시면 나는 어디에 숨을까? 얼마나 문 밖에서 기다려야 할까? 그래도 아버지를 한번 만이라도 보고 내 마음을 알려드릴 수만 있으면, 그리고 일꾼으로 받아 주신다면 . . . 아, 얼마나 좋을까! 생각은 꼬리를 물었다. 비틀거리며 걸었다.
 
드디어 그리운 마을 입구에 다달았을 때는 허기도 잃은 채 눈을 들어 멀리 서서 아버지의 집을 눈물겹게 바라다보았다. . . 발은 더 이상 띠어지지가 않았다. . .
 
그런데 보라, 그 큰 집 앞에 그토록 그립고 죄송했던 아버지가 이마에 손을 짚고 아들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오, 아버지는 이 거지가 된 아들을 즉시 알아보았다.
아버지는 “ 내 아들아 . . . ” 부르고는 달려오기 시작했다. 아들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기쁨을 이기지 못했다. 따라온 일꾼들에게 살찐 송아지를 즉시 잡고 잔치를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더러운 옷과 냄새와 눈물에 젖은 둘째 아들은 “아버지, 저는 아버지와 하늘에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아들이 아니고 일꾼의 하나로 보십시오.”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듣지도 않았다. 일꾼들에게 가장 좋은 옷을 가져오고 금가락지를 손에 끼우라고 했다. 아마 목욕을 한 후 겠지만.
아버지는 “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어요. 우리가 먹고 즐깁시다.”반가와 하는 이웃들에게 흥겨움을 청했다.
“너는 나의 아들이야. 종이 아니야. 네가 건강하게 돌아 온 것으로 나는 완전히 기쁘구나.” 금가락지를 끼운 것은 아들로서 모든 위치를 원상복귀 시킨 상징이다.
종이 아니고 아들임을 공포했다. 이 둘째 아들은 너무나 좋은 아버지를 한 없이 사랑하고 아버지의 집이 세상에서 가장 좋고, 아버지의 일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 된 것이다. 사랑과 감사로 새로 태어난 아들이 되어 남은 삶을 새 출발하게 되었다. 이웃들과 아버지 집안 과 친척들은 노래하고 춤추고 먹고 즐거워했다.
 
맏아들은 왼 종일 들에서 일꾼들과 함께 쉴 틈 없이 일을 하고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난데없이 집안에서 노래와 악기 소리, 잔치 집 음식 냄새가 길에 까지 나왔다. 맏아들은 집안 일꾼을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네에, 둘째 도련님이 돌아와서 건강한 아들을 맞으신 아버지께서 살찐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뭐어 ? ! ”맏아들은 몹시 화가 났다. 물론 잔치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허급지급 나왔다. 맏아들의 화는 터졌다.
“내가 지금까지 긴 세월 동안 아버지의 모든 명령을 종처럼 복종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염소새끼도 한 마리 안주셨죠? 내 친구들과 먹고 즐기라고요.
그러나 둘째는 무엇을 했습니까? 그 엄청난 재산을 방탕한 여자들과 놀아나면서
다 써먹고 이제 뻔뻔스럽게 돌아왔군요. 그리고 아버지는 살찐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를 하시는군요.”
 
 
맏아들의 마음에는 이 망난이의 아버지야 말로 이해 할 수 없는 주인, 인색한 주인, 무서운 주인으로 원망스럽고 배신감이 들었다. 그토록 내가 수고 하면서 불평도
없이 조건 없이 복종하며 얼마나 많은 재산을 늘려주었는가?
참는 것이 한계에 부딪치면서 슬픔과 불평이 반항으로 터졌다.
 
아버지는 이 기쁜 날에 기쁨을 나누지 못하고 진실로 고통을 받고 있는
아들에 몹시 마음이 아팟다. 아들에게 간청 했다.
“나의 아들아, 너는 항상 나하고 같이 있지 않니? 내 것이 다 너의 것이지
않느냐? 그러나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잃었다가 찾았으니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니?”아들임을 가르쳐주고 아들이 가지는 특권을 가르치면서 위로했다.
 
이 맏아들의 고통은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에 시작이 되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권리도 몰랐다. 자신은 종인 줄 알았고 아버지를 나쁜 주인으로 알았다.
나쁜 주인의 모든 명령을 복종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기쁨은 없고 주인이 두렵고
원망스럽고 인색해 보였다. 이 믿음직하고 유능하고 안타까운 맏아들에게 아버지는 참으로 그 근본 문제를 해결 해 주기를 절실히 소원했다.
 
이 좋은 아버지는“내 아들아” 하고 불렀다. 한글 성경의 번역은 “얘야”로 되어 있는데 신약 성경의 원어인 그리스어는 “나의 아이야 ”로 되어있다.
이는 My child 인데 이 말은 나의 아들아 혹은 나의 딸아 이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수가에서 제자들에게 “ My children, 고기가 있느냐?” 하고 물으신 것과 같은 말이다.
 
이는 맏아들에게 너는 종이 아니란다. 너는 나의 아들이란다.
맏아들이 자신에 대해 가진 틀린 정체성(Identity, Self esteem)을 바로 가르쳐
주셨다. 너는 아들이기 때문에 나와 함께 산단다. 나는 모든 좋은 것의 본체요 차고 넘친단다. 너는 나의 아들이기 때문에, 나와 함께 살기 때문에 나의 모든 것이 너의 것이란다. 염소 새끼 한 마리가 아니고 황소 10마리를 잡아서 너의 친구들과 즐기는 것은 너의 당연한 권리란다. 네가 기뻐하는 것이 나의 최대의 기쁨이거든.
아들아 이것을 몰랐구나. 이제 알았지? 더 이상 종처럼 살지 말고 아들처럼 나를 즐기며 유산을 상속 받은 아들처럼 기뻐하고 나눠주고 쓰고 증식하면서 살아다오.
아버지의 이 간곡한 설명을 맏아들은 어떻게 들었을까?
오늘날 신실하고 전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맏아들처럼 종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와의 교제도 별로 없이,
사랑도 구속의 감격도 기쁨도 별로 없이 두려움과 죄책감과 책임감 속에서 힘에
겹도록 일을 한다. 그리고 아들의 특권은 별로 누리지를 못한다.
 
둘째 아들은 확실히 탕아였다. 그러나 자신은 아버지의 아들인 것을 알았다.
아버지는 참 좋고 부유하신 것도 알았다. 그러므로 자신에게는 유산이 있음도 알았다. 그리고 당당히 자기의 것을 요구했고 받았다.
그러나 그 유산의 특권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거지가 되었고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다. 그러나 좋은 아버지를 알았기 때문에 돌아올 용기와 희망이 있었다. 비록 자신의 방탕한 생활로 아들의 자격을 잃었다고 생각했으나 다시 살아날 곳은 아버지의 집뿐임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탕자 아들이 죽지 않고 건강하게 돌아온 것 을 한없는 기쁨과 감사로
환영했다. 인생에서 나의 잘 못으로 나의 인생을 재기 불능으로 망쳤을지라도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오기만 하면 아버지는 아들로 맞으신다. 그리고 아들의 모든 특권을 일순간에 회복시키신다. 아버지는 두 아들을 다 찾으신 것 때문에 말 할 수한 없이 행복하시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해주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인 우리에게
알려 주시려고 간절히 소원 하시면서.
 
예수님께 찬양.
 
토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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